"캐나다에서 서커스는 국가 전략상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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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멀티미디어와 서커스는 몬트리올의 전략상품이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유력한 공연기획가(PD)인 존 램버트는 '서커스학교(cole Nationale de Cirque)'로 기자를 안내하며 서커스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관심도를 이렇게 표현했다.

평소 서커스를 '단순한 기예(技藝)' 정도로 생각하던 기자는 서커스가 국가(혹은 주정부)의 전략상품이라는 말에 좀 당황스러웠다. 서커스 학교는 구(舊)몬트리올의 옛 역사(驛舍)를 개조한 2층 건물에 있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2백평쯤 되는 체육관 두곳에서 열대여섯살 정도의 학생 20여명이 몸을 풀고 있었다. 줄(바)을 타고 내려오면서 무용을 하거나 공중제비(텀블링)를 돌고,자전거 묘기를 하는 등 제각각이었다.

올해로 창립 21주년이 된 이 학교는 캐나다는 물론 북미 유일의 3년제 서커스 전문학교(현재 학생수는 1백여명)이다. 홍보 담당자인 미셸 르고는 "1995년부터 퀘백주 교육부가 인정한 학위(디플롬)도 주고 있다"며 학교 이름에 '내셔널(주정부)'을 붙인 연유를 설명했다. 서커스 교육이 주정부 차원에서 장려되고 있는 증거다.

이 학교는 배우 출신 기 갸롱 등 두명이 설립했다. 르고는 "이들은 원래 레크리에이션을 염두에 두었으나 유럽의 유명 서커스 공연을 둘러본 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 '몬트리올 서커스'의 독특한 경향으로 발전시키고자 학교를 세웠다"고 말한다.

갸롱은 3년 뒤 '태양 서커스(Cirque du Soleil)'단을 만들어 산학협동시스템을 구축했다. 태양 서커스는 애크러배트와 체조·무용·연극·음악 등을 총망라한 극적(劇的)인 서커스쇼 '퀘이담' 등으로 세계 서커스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라스베이거스 등 세계 대여섯 군데에서 순회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 단체 외에 역시 몬트리올산 '서커스 엘루아즈(Cirque loize·93년 설립)'가 후발주자로 맹활약하고 있다.

퀘백주 정부는 서커스가 독자적인 예술로 세계적인 성가를 높이자 몬트리올 중심가를 '서커스 타운'으로 집중 육성하는 프로젝트를 세웠다. 기존의 서커스 학교와 태양 서커스,그리고 앞으로 건립될 서커스 관련 자료 센터·상품점 등을 연계한 관광코스로 집중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첫 사업으로 서커스 학교는 1천8백만달러(1백30억원)의 주정부 지원금을 받아 내년 13층짜리 새 교사를 지어 이사한다.

왜 몬트리올이 이처럼 세계적인 서커스 중심지로 발돋움하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다른 도시에 비해 인종이나 타문화에 대한 편견이 없다는 지역적인 특성을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서커스 엘루아즈의 예술감독 자누 핀쇼는 "몬트리올은 여러 인종들의 문화와 장르 간의 교류가 어느 도시보다 활발하다"며 "서커스는 그런 복합문화의 총화(總和)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학교나 서커스단 모두 중국·베트남,혹은 유럽 등 외국계가 전체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개방적이며 배우는 것도 한국·중국·러시아의 각종 기예들을 망라하고 있다. 핀쇼는 기예 중심의 중국·프랑스 등 서커스 강국과 구별되는 캐나다 서커스의 특징으로 극적이며 환상적인 요소의 결합을 꼽았다. 미국·유럽의 여러 나라에 비해 국제적인 문화상품이 적었던 캐나다는 지금 서커스 육성을 통해 문화강국에 도전하고 있다.

몬트리올=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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