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소리 다 내는 벨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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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서울 청담동 청담벤처플라자 8층. 머리를 길게 기르고, 염색까지 한 젊은이들이 가요·팝송·영화음악을 들으며 신나게 전자악기를 연주한다. 벤처기업 중에서도 튄다는 휴대폰 벨소리 서비스업체 ㈜야호커뮤니케이션의 뮤직팀. 이들의 직함은 아티스트다. 무슨 아티스트? 바로 '벨소리 아티스트'다. "누구 벨소리가 재미있고 튀나"를 따지며 10, 20대들이 너도나도 내려받기하는 휴대폰의 벨소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란 뜻에서다.

김홍석 팀장을 포함한 야호의 벨소리 아티스트 10명이 하루에 만들어내는 벨소리는 5~7곡. 김팀장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벨소리가 하루 평균 10만건씩 이용된다"며 "기존 음악을 벨소리로 변형하는 단순한 작업이라고 우습게 보지 말라"고 한다.

휴대폰 벨소리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벨소리 아티스트라는 신종 직업까지 등장했다. 인기가요 순위를 일러주는 빌보드차트에 빗대 벨소리의 인기도를 나타내는 '벨보드차트'도 나왔다.

지난해 국내 벨소리 시장규모는 5백억원.올해는 1천억원으로 추정된다. 유료화조차 쉽지 않은 콘텐츠 시장과 비교하면 엄청난 규모다. 시장이 커지면서 업체들의 '벨소리 전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이 전쟁의 첨병(尖兵)들이 바로 벨소리 아티스트들이다.

◇벨소리를 만드는 사람들=현재 벨소리를 서비스하는 업체는 40여개사. 회사별로 3~10명의 벨소리 아티스트들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전체적으로 약 1백50여명이 일하고 있다.

처음엔 컴퓨터음악을 한 사람들이 많았으나 최근 16, 40화음 등으로 벨소리 제작의 난이도가 높아지고, 이용자들의 입맛이 까다로워지면서 음악을 전공했거나 가수활동을 했던 사람들의 참여가 늘고 있다. 인포허브의 김현태씨는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그는 "꼭 음악을 전공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음악적 감각이 있으면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다날의 뮤직콘텐츠팀 백승부 팀장은 가수 출신. 백팀장은 "단음일 때는 기술만 있으면 됐지만 16화음 이상의 경우는 그야말로 음악가의 예술적 감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하는 일은 엇비슷하다.인기를 끌만한 곡을 골라내 컴퓨터음악파일(미디)로 만든 뒤 벨소리에 맞게 변형한다. 이후 최종 수정작업을 거친 뒤 이동통신사에 제공한다.

◇이런 벨소리가 인기=과거 전화 벨소리는 '따르릉'이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원하는 어떤 소리도 벨소리로 만들 수 있다. 4화음 휴대폰이 나왔을 때는 잔잔한 화음의 CM송이, 16화음 단말기에 맞춰서는 사람의 음성을 활용한 벨소리나 인기가수의 최신곡, 뻐꾸기나 기차소리 같은 자연음이 인기를 끌었다. 예컨대 '목소리벨'은 드라마 '여인천하'의 경빈 목소리로 '뭬야!'라는 말이 들리고, 성우들의 목소리가 벨소리로 이용된다.

최근엔 드라마 삽입곡의 다운로드 수가 늘고 있는데 '겨울 연가''피아노' 등의 드라마 음악이 인기다. 16화음은 16가지 악기를 동시에 연주했을 때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말한다.곧 서비스될 40화음 벨소리는 재즈·힙합·클래식 명곡·태교음악까지 다룰 수 있어 휴대폰이 사실상 오디오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이용방법과 요금=세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휴대폰에 있는 매직엔·이지아이·네이트 등 무선 인터넷 전용 버튼을 클릭한 뒤 벨소리 메뉴를 선택해 다운로드받는 방법이다. 요금은 곡당 1백80~3백원. 10초당 20원 안팎의 무선 인터넷 접속 요금은 별도 부담해야 한다.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해도 된다. 이동통신사와 벨소리 서비스업체의 홈페이지에서 '벨소리 다운로드' 메뉴를 찾아 원하는 곡을 골라 다운받으면 된다. 마지막으로 유선전화의 음성사서함을 이용할 수 있다. 700-5782(야호), 700-5857(다날) 등 음성사서함 번호를 누른 뒤 안내되는 음성 메시지를 따라 하면 원하는 곡이 휴대폰으로 무선 전송된다. 요금은 30초당 50원 안팎. 하지윤 기자

야호커뮤니케이션은 가수 김건모의 노래 '짱가'가 TV에 첫 방송된지 3일째 되는 날 이 노래를 벨소리로 만들어 서비스했다.

마케팅부 이정훈 부장은 "노래를 듣는 순간 히트할 것으로 생각해 하루 만에 벨소리로 만들었고 이틀 뒤 서비스됐다"고 말했다. 짱가 벨소리는 곧바로 다운로드 1위를 기록했다. 그는 "TV 등에서 베스트곡으로 선정되려면 방송횟수·음반판매량 등을 집계해야 돼 1개월 정도 걸리지만, 벨소리는 서비스와 동시에 즉시 결과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벨소리 서비스가 인기를 끌면서 오프라인 음악시장에 대한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벨소리 서비스 시장과 음반 시장의 주고객이 10, 20대로 일치하는데다 매일 집계가 가능한 벨소리 다운로드가 선행지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최신 곡이 나왔을 때 벨소리 다운로드에서 상위권에 들어야 TV·잡지 집계에서 높은 점수를 얻는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벨소리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벨소리의 인기순위를 매긴 '벨보드차트'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벨소리 서비스업체와 이동통신사들이 자체적으로, 일부 신문과 잡지들이 벨소리 서비스업체와 제휴해 순위를 발표한다.

음반 순위 집계 잡지인 벨벨차트는 보름단위로 벨소리차트를 소개하는데, 전국 주요 음반 매장에 배포돼 음반시장 동향의 잣대로 활용되고 있다. 다날처럼 전용 홈페이지(m1004.com)를 통해 매일 집계하는 곳도 있다.

최근엔 음반 제작자들도 신규 음반의 반응을 알아 보기 위해 벨보드차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벨소리 서비스업체와 공동으로 사전 반응도를 조사한다.

다날의 박성찬 사장은 "휴대폰이 40화음, 64화음으로 발전하면 반주와 노래소리는 물론 사실상 모든 장르의 음악을 벨소리로 표현할 수 있다"며 "벨보드차트가 뮤직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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