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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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때가 되면 날아왔다가 다시 때가 되면 날아가는 철새는 늘 신비스런 존재였다. 철새 이동의 신비를 풀어 보려는 인간의 노력은 태고적부터 계속됐다. 근래에 각국이 새의 다리에 가락지를 끼워 날려 보내는 표지방조(標識放鳥)를 대규모로 실시, 철새의 이동경로 등을 어느 정도 밝혀내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첨단과학도 철새의 수수께끼를 완전히 풀지는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가장 유력한 학설은 철새들이 태양의 위치로 이동방향을 정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조류학자 구스타브 크라머가 찌르레기를 관찰해 얻어낸 결론이었다. 그러나 이는 밤에 나는 철새들의 이동을 설명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온 게 별자리를 보고 방향을 잡는다는 설이다.

가장 멀리 이동하는 북극제비갈매기의 경우 북극에서 남극까지 2만㎞가 넘는 거리를 난다고 한다. 태풍 같은 기상이변이 없으면 정확하게 목표지점에 도착한다고 하니 그저 경탄스러울 따름이다. 위에 열거한 학설을 아무리 들이대 봐야 자연의 신비 앞에 오히려 머쓱해질 뿐이다.

요즘이 바로 철새가 이동하는 계절이다. 늦가을부터 우리나라를 찾은 청둥오리 같은 겨울철새들은 2월 말부터 3월 중순 사이에 번식지인 시베리아로 다시 날아간다. 봄기운이 보다 완연해지면 이번엔 '강남 갔던 제비'를 비롯한 여름철새들이 우리 곁을 찾아온다. 말이 강남(江南:중국 양쯔강 남쪽)이지 실제는 동남아는 물론 멀리 호주에서까지 날아온다고 한다.

특히 열대와 한대의 중간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먹이까지 풍부해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가 되고 있다. 텃새가 57종에 불과하지만 철새는 무려 2백83종에 이른다. 겨울철새가 1백16종으로 여름철새(64종)의 2배 가량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이렇듯 철새 세상이기 때문일까. 늘 양지만 좇는 '인간 철새'들도 참으로 많다. 정치의 계절이 시작되면서 이 인간 철새들의 이동도 본격화 했다.

엊그제 충북지사가 자민련을 탈당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 "배신과 변절의 말로가 얼마나 참혹한지 뼈에 사무치게 될 것"이란 섬뜩한 말도 있었고, "충절의 고장을 변절의 고장으로 전락시킨 기회주의적 행태"라는 비난도 있었다. 글쎄 우리나라에 철새 정치인에게 당당히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 '텃새 정치인'은 과연 몇이나 될까.

베를린 유재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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