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대協, 日대사관앞 수요집회 10년 "일본이 공식사과할 때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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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다신 올 수 없는 세월이야-. 한번 다시 젊어지곤 싶지만"

지난 13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이날로 꼭 5백회째를 맞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상임대표 池銀姬)의 수요집회에 참가한 황금주(82)할머니는 새삼스레 감정이 복받치는 듯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수요집회는 정대협 회원들이 지난 10년간 매주 수요일이면 일본 대사관앞에서 벌여온 항의집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비바람을 맞으며 싸워 왔지만 아직도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사과 한 줄 받아 내질 못했다.

이날도 피해 할머니들을 돕는 '할머니 지킴이' 소속 회원 1백여명이 대사관 접근을 시도했으나 경찰이 접근을 막았다.

수요집회가 시작된 것은 1992년. 그해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일본 총리의 방한을 규탄하기 위해 대사관 앞에서 연 집회가 정례화돼 오늘에 이르렀다.

그동안의 최대 성과는 피해 할머니들이 수치심을 털어내고 자신감을 회복한 것.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숨기고 힘들게만 살아온 그들이 떳떳하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정신대 문제를 역사적 문제로 부각시킨 것이다.

故 김학순(97년 사망)·문옥주(96년 사망) 할머니 등 이젠 고인이 된 몇 몇 할머니들이 앞장을 섰었다.

대책협의회 오지연 간사는 "이젠 할머니들 10여분이 번갈아 가며 꼭 수요집회에 참석하신다"며 "실무자들이 지쳐있을 때 '일본이 사죄할 때까지 조금 더 힘을 내자'고 격려하는 쪽도 오히려 할머니들"이라고 말했다.

수요집회에는 반일·인권단체 관계자들을 물론, 산 역사교육을 받으려는 학생들과 한·일 과거사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들까지 꾸준히 참석해 왔다.

서울 남성초등학교 학생들은 1년 동안 위안부 문제에 대한 토론을 거쳐 만든 문집을 들고 지난 해 3월 수요집회를 주관했었다.

7월엔 유네스코(UNESCO) 소속 외국인 대학생들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공동체인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5일 동안 생활하며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날 5백회 집회에서 회원들은 97년 숨진 강덕경 할머니를 떠올렸다.

당시 姜할머니는 폐암투병 중임에도 병원 앰뷸런스를 타고 수요집회 현장을 찾아 "일본 우익단체가 만든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가기금'에서 주는 보상금을 받으면 일본 정부의 죄를 물을 길이 사라진다"며 "흔들리지 말고 싸우자"고 열변을 토했다.

대책협의회의 윤미향(尹美香)사무처장은 "집회가 5백번이나 개최된 것은 한국과 일본, 양국 정부 모두에게 치욕스러운 일"이라며 "수요집회의 성과가 더 이상 피해 할머니들의 자신감 회복에만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궁욱 기자

< periodist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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