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국가 과제 <9> 생활외국어는 필수다 (上) : 콧대 센 프랑스도 佛語고집 접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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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즘 프랑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풍경 한가지. 외국인들이 낯선 길에서 헤매고 있으면 영락없이 누군가 달려와 말을 건넨다.

"May I help you(도와드릴까요)?" 열 중 아홉은 고교생이다. 그동안 자신이 갈고 닦은 영어실력을 시험해보고 자랑도 하겠다는 심산이다.

파리 도심 레알 지구에서 만난 프레데릭(17)도 그런 친구다. 근처 미술관으로 가는 길을 물어보았다.

프랑스어 억양이 짙은 서툰 영어지만 또박또박 설명해낸다.

문법엔 정통해도 외국인을 만나면 벙어리가 되는 우리 학생들과 쉬운 단어만 갖고 할 말을 다하는 프랑스 학생들과의 차이는 너무도 컸다.

프랑스 정부는 6~7년 전부터 영어의 중요성을 뒤늦게나마 인식하고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고교만 졸업하면 웬만한 생활영어는 구사할 수 있을 정도다.

중·고교의 경우 영어수업이 일주일에 2~4시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집중적인 회화교육으로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수업은 미리 설정한 상황에 맞춰 교사와 학생들이 1백% 영어로 자유대화를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영어 에세이를 써오도록 하는 숙제도 자주 준다. 작문능력 향상은 물론 회화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고등 영재교육기관인 그랑제콜 입시에선 대부분 영어면접을 하기 때문에 우수한 학생이 영어를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입문 과정인 초등학교의 경우 어휘력을 향상시키는 데 중점을 둔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물건들이나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설물들의 영어 단어를 외우게 하는 식이다. 프랑스 교육부는 지난달 말 2005년엔 유치원 과정부터 영어 조기교육을 하겠다는 새로운 교육프로그램을 제시해 놓았다.

이훈범 파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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