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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선율 넘실대는 '클래식의 바다'로 가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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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해마다 이맘때면 우면산 기슭에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집니다. 올해로 14년째를 맞는 교향악 축제입니다. 4월 1일부터 12일까지 전국의 11개 교향악단이 경연(競演)을 치르는 '오케스트라 릴레이'입니다.

올해는 큰맘 먹고 티켓을 구입하시겠다고요. CD로 듣는 것도 좋지만 어디 생연주의 감동에 비길 수 있겠습니까. 클래식 입문에 오케스트라만큼 적절한 교재가 있을까요. 부담 없는 가격에 가족 나들이로도 적격이지요.

우선 1백명에 가까운 단원들을 무대 위에 어떻게 배치하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현악기 주자들이 반원형으로 지휘자를 둘러싸고 그 뒤에 관악기·타악기 주자들이 객석을 마주보고 앉습니다. 현악기가 무대 앞쪽에 있는 것은, 관악기보다 음량이 작기도 하지만 음악의 흐름을 주도해 나가기 때문이지요.

음정이 높은 악기는 무대 왼편에,낮은 소리를 내는 악기는 오른쪽에 배치합니다. 현악기는 바이올린·비올라·첼로·더블베이스,목관악기는 피콜로·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바순, 금관악기는 호른·트럼펫·트럼본·튜바의 순으로 말입니다. 주로 선율을 담당하는 바이올린이 명료한 소리를 내려면 악기 몸통의 ∫자 모양의 홈이 객석을 향해야 하기 때문이죠. 모든 악기가 오케스트라에 들어갈 순 없지요. 리코더나 기타·수자폰·밴조는 물론 색소폰이나 오르간도 정규 멤버가 아닙니다.

오케스트라의 음색을 결정하는 것은 역시 관악기입니다. 오보에 주자가 혼자 연주하는 선율은 멀리 뚜렷하게 퍼져 나갑니다. 혼자 연주할 기회가 많은 수석 주자들은 스트레스도 많이 받습니다. 수많은 청중 앞에서 혼자 연주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래서 커튼콜 때 지휘자가 따로 불러세워 특별히'공로'를 인정해 주는 겁니다.

오케스트라가 오늘날과 같은 진용을 갖춘 것은 19세기 중반입니다. 그후 오케스트라는 줄곧 팽창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청중이 점점 많아졌기 때문이지요. 1784년 모차르트의 교향곡이 빈에서 연주되었을 때 음악회에 모인 청중은 불과 1백74명이었습니다. 요즘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하이든이나 모차르트를 자주 접할 수 없는 것은 엄청나게 커진 객석 규모 때문이겠지요.

연주는 물론이고 리허설도 지휘자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단원들을 일사불란하게 불꽃 튀기는 현란한 연주를 들려주는 거장들의 집합체로 만드는 것도 지휘자의 몫입니다. 지휘자는 교향악 연주회라는 의식(儀式)을 집전하는 사제입니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관객의 눈길을 끄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하지만 지휘자의 카리스마는 성실과 진실, 음악에 대한 헌신에서 비롯됩니다.

프로그램은 대개 서곡(또는 교향시)으로 시작해 협주곡·교향곡(또는 모음곡)으로 끝나죠. 서곡이나 교향시는 단악장 작품이지만, 협주곡·교향곡·모음곡은 여러 악장으로 구성돼 있어 악장 사이의 박수는 금물입니다.

메뉴에 나와 있지 않은 '디저트'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오케스트라가 미리 앙코르곡을 연습해 두는 게 보통이지만, 어디까지나 주방장(지휘자) 마음 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박수는 (앙코르곡의) 청구서가 아니라 (프로그램에 대한) 영수증"이란 말도 있듯이, 뜨거운 박수에 녹아나지 않는 지휘자가 어디 있을까요.

18~19세기의 몇몇 작곡가들만 연주한다고 해서 오케스트라를 가리켜 '음악 박물관'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 박물관에 전시된 음악은 들을 때마다 전율감을 느끼게 하는, 살아 숨쉬는 작품들입니다. 레퍼토리가 어렵게 느껴진다고요? 모차르트·베토벤으로 시작해 보세요. 슈베르트·브람스·슈만·드보르자크·멘델스존·차이코프스키 정도면 충분합니다. 올해 교향악축제도 이들 스탠더드 레퍼토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특히 차이코프스키(8곡)가 가장 많이 연주되는군요. KBS교향악단·서울시향·대구시향 등의 지휘자들이 러시아 출신이기 때문이겠지요. 슈만의 교향곡 '봄'(광주시향), 말러의 교향곡 '부활'(울산시향)등 봄내음을 느낄 수 있는 곡들에 유난히 눈길이 갑니다.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머리를 프로그램에 파묻고 어두운 조명 아래 깨알같은 글씨를 읽는 분들이 있습니다. 주의력이 분산되기 때문에 차라리 눈을 감고 듣는 편이 낫습니다. 지휘자의 동작과 연주자들의 표정을 유심히 보면 지루하지도 않고 음악이 쉽게 들립니다. 객석의 조명이 어두워지고 박수가 터져 나오는군요. 드디어 지휘자가 등장했습니다. 연주가 곧 시작될 겁니다. 그럼 나중에 로비에서 뵙겠습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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