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보는 다양한 시각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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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신간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는 교육계와 출판계에 파장을 일으킬 '뇌관'으로 지목된다. 보다 충분한 논의를 위해 이 책의 책임집필자와 기획자를 현행 제1종 국사교과서 집필위원과 맞대면 시켰다. 서로의 입장 때문에 긴장된 대화로 시작한 이들은 역사교육의 다양성을 위해 대안교과서의 등장은 환영할 만하다는데 의견을 함께 했다.

▶사회=이명희 선생님은 이번 7차 교육과정에 따른 국사 교과서에도 집필위원으로 참가했다. 따라서 이 대안 교과서와는 약간의 긴장관계를 피할 수 없었을텐데, 이 책을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이명희=교실안에서의 수업 흐름에 맞춰 각 단원을 구성한 점이 돋보였다. 그리고 전국역사교사모임의 시각이 느껴지는 것은 학생들에게 역사에 대한 다양한 접근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책만으로 수업을 할 경우 학생들에게 역사를 보는 균형적 관점을 잃게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봤다.

▶이재민=이 책에 고유한 색깔이 있다는 지적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건 운동권 교과서라는 개념과는 전혀 다른 것이고, 교과서로서의 보편성을 존중했다.

▶사회=참고서가 아니라, 대안 교과서라고 했는데 이 책이 현장에서 사용될 수는 있겠는가.

▶이명희=나도 그점이 궁금했다. 현재의 법 체계 안에선 정식 교과서로는 안된다. 부교재로 활용하기 위해서도 시·도 교육청에 신청해 '인정도서'로 채택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김육훈=당장 이 책을 교과서로 도입하자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대안 중 하나라는 뜻이다. 이 책이 현행 교과서를 대체하는 '정전(正典)'이 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교과서가 1종만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한다.

▶사회=현행 1종 교과서제를 검인정제로 바꿔야 한다는 말인데.

▶이명희=나도 검정 교과서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로선 우리 역사를 보는 시각들이 너무 대립적이다. 그래서 '국민통합'이란 목표를 염두에 두고 정부가 1종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만 해도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늘 메마른 교과서''앙상한 교과서'등 현행 교과서에 대해 지나친 평가의 표현을 쓰고 있지 않은가.

▶김육훈=사소한 표현의 문제보다 우선은 전체적인 의미를 봐주었으면 한다. 이 책은 역사 교과서에 대한 잘못된 개념부터 바로잡기 위한 첫 걸음이다. 역사 교과서란 '객관적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 아니라 수업 안내서이며,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어야 한다.

▶사회=그래서 서술 방식도 달리한 것인가.

▶김육훈=당연하다. 이야기 구조를 잘 살리고 그에 맞는 문체를 도입했다.

▶이재민=고백하지만 이 책을 진행한 편집자로서의 불만은 문체나 형식이 보다 파격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집필진이 기존 교과서의 틀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자기 검열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이 책은 최신 역사서술 방식은 물론 컴퓨터 그래픽·사진 애니메이션 등 우리 출판계가 90년대에 이룬 편집 디자인의 성과들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자부한다.

▶이명희=고백하지만 현재의 예산으로 그런 교과서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번 중학교 국사 교과서의 경우 3천5백만원 들었다.

▶사회=교과서야말로 학생들이 가장 많이 보고, 또 한번 만들어지면 몇 년씩 사용하는 책이다. 그런데 예산이 정말 그것 밖에 안된단 말인가. 이 책은 얼마나 들었나?

▶이재민=2억원쯤 썼다. 그래픽 한 장만 해도 60만원이다.

▶이명희=부럽다. 초등학교 교과서는 1천8백만원으로 만든 것도 있다. 그런데 인터넷 교육사이트에 그 교과서 내용을 올리는데는 6천만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시각 자료를 보강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회=본말이 역전됐다. 기본 콘텐츠에 더 투자했어야 하는게 아닌가.

▶김육훈=정부가 주도해서 만드는 1종 교과서는 그렇게 투자를 안하니 문제다. 사실 역사 교과서 편찬은 일선 교사들이 주체가 돼야 하는데 힘든 작업과정에 비해 의견 반영도도 낮고 보수도 형편없어 대부분 꺼린다.

▶이명희=교사들이 주체가 돼야 한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거의 '소외'돼 온 것은 분명 문제다. .

▶이재민=교과서에 대한 일반 단행본 출판사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갈리마르 같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출판사는 교과서 제작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구조에 접근하러려면 현재의 검인정 교과서 제작에도 앞선 기술을 가진 출판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사회·정리=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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