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용' 연구소 너도나도 설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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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편법 선거운동을 노린 각종 '선거용' 연구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지역발전''도시문제연구' 등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속살로는 개소식과 회원 모집 등을 통해 이름 알리기나 세불리기, 심지어 경력 부풀리기용으로 이용되고 있다.

1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전국의 지방선거 출마예정자 등이 개설한 '연구소'는 무려 1백58곳이나 된다.

전북 남원시에는 시장 출마를 희망하고 있는 C씨 등 3명이 최근 각각 연구소를 개설했다. 기존 것까지 합하면 인구 10만명의 도시에 연구소가 7곳이나 되지만 변변한 연구 실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에선 구청장에 뜻을 두고 있는 10여명이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사무실에 전화를 걸면 대부분 연구소 명칭이 아닌 후보자 이름을 대며 "○○○사무실"이라고 받는다. 한 출마예정자는 "전문가들을 초빙하는 세미나는 재정문제로 엄두도 못내고 지역 인사들과 현안에 대해 얘기를 주고받는 게 고작"이라고 말했다.

충북의 경우 도내 기초단체장 후보들이 설립한 연구소가 세곳이지만 연구직원은 없는 것으로 선관위는 파악하고 있다. 대신 이들은 선후배 등을 회원으로 가입시킨 뒤 이들을 조직원인양 선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경북 경주시 선관위는 '경주시정개발연구원'을 만들고 동창회원 등에게 개원식 안내장 4천5백여장을 무더기로 발송한 혐의로 원장 임모씨에 대해 경고조치했다.

연구소 명칭을 교묘히 이용한 사전 선거운동도 적지 않다. 주부 金모(47·남원시 광치동)씨는 "며칠 전 한 연구소에서 시장 선거에 대한 여론조사를 한다며 전화를 걸어 집중적으로 특정 후보만 선전했다"고 말했다.

이밖에 연구소가 경력 과대포장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사법고시 응시, 이장 등이 주 경력이던 전북도의원 도전자 H씨는 최근 '연구소 이사' 직함으로 명함을 바꿨다. 현재 특별한 직업이 없는 전직 의원이나 전직 관료들도 선거를 앞두고 명함용으로 연구소를 열고 있다.

이처럼 선거 때마다 사이비 연구소나 포럼 등이 득세하자 좋은 뜻을 갖고 참여했던 시민들이나 선의의 지역 연구소, 시민단체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지난달 27일 경기도 고양시에선 학계·법조계·재계 등에서 활약 중인 고양시민 2백여명이 모여 포럼을 만들었으나 시장 출마예정자가 위원장으로 선출돼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고양청년회 오동욱(吳東昱·32)회장은 "순수한 시민운동을 펼치는 시민단체나 지역 연구소들까지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앙 선관위 관계자는 "연구소·포럼 등의 단체는 언제든지 사조직으로 전환될 개연성이 커 예의 주시하고 있으나 사전선거운동이 내부적으로 워낙 엄밀하게 이뤄져 적발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용백·장대석·안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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