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위전 본선 8인의 얼굴 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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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한달에 걸친 소용돌이 끝에 제36기 왕위전 본선멤버가 결정됐다.

첩첩산중의 혈로를 뚫고 끝까지 살아남은 본선의 새 얼굴은 윤현석(27)6단·목진석(22)6단·조한승(20)5단·이현욱(22)4단 4명. 이들과 지난해 시드 조훈현9단·서봉수9단·안영길4단·이세돌3단 등 도합 8명이 왕위 이창호를 향한 도전권을 놓고 풀리그를 펼치게 된다.

2일 끝난 예선전은 필사의 좁은 문이었다. 1백75명의 참가기사에게 주어진 본선 티켓은 겨우 네장.강자가 따로 없는 최근의 바둑계 현실을 반영하듯 현역 최고의 기사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나갔다. 또한 많은 팬을 가진 유명한 '9단'들은 신예들의 포위망 속에서 전멸의 비운을 당해야 했다.

2001년 신인왕 박영훈2단은 올해 최고의 유망주로 꼽혔으나 윤성현7단에게 져 중도 탈락했고 조훈현9단과 KT배 우승컵을 놓고 1대1로 맞섰던 최철한4단은 김성룡7단에게 무릎을 꿇었다.

군복무를 끝내고 복귀한 1999년 신인왕 김만수4단은 결승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나 지난해 최다승자 조한승5단에게 꺾였다.

왕위 4연패를 이룬 업적 때문에 정상의 프로기사 중에서 유일하게 '유왕위'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유창혁9단도 신예강자 조한승5단에게 패배해 충격을 가중시켰다.

양재호9단은 9단으로선 유일하게 예선 결승전까지 올라갔으나 윤현석6단에게 져 결국 '입신(入神)'들은 신구 세력에 관계없이 모두 탈락했다. 신예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루이나이웨이(芮乃偉)9단·최명훈8단 등 타이틀 보유자들조차 초반에 탈락하는 가운데 이용수3단과 안조영7단은 결승까지 치고 올라갔으나 각각 목진석6단과 이현욱4단에게 져 아쉬움을 달래야했다.

지난해 시드자격으로 본선에 합류한 서봉수9단은 예선전을 지켜본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세계 최고의 프로골퍼 타이거 우즈도 컷오프를 당하는데 바둑계도 지금 그런 상황입니다. 실력이 엇비슷해 누가 어느 칼에 맞을지 아무도 모르는 거지요. 한번 예선무대로 떨어지는 날엔 설령 이창호9단이라도 그 지옥문을 다시 통과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중앙일보가 주최하고 삼성카드가 후원하는 왕위전은 1966년 시작해 올해로 36년째를 맞는 전통의 기전이다. 66년부터 89년까지 김인9단이 7회, 조훈현9단이 13회, 서봉수9단이 2회, 하찬석8단이 1회 우승했고 90년 이후엔 유창혁9단(4회)과 이창호9단(6회)이 우승을 나눠가졌다.

오랜 역사 때문에 풀리그로 펼쳐지는 본선무대는 프로기사라면 누구나 한번쯤 밟아보고 싶어하는 최고의 무대로 손꼽힌다. 7일 윤현석6단 대 이세돌3단이 본선 개막전을 뒀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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