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여중생 성폭행 다시 수사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지난 주말 밤 서울 광화문에서 경남 밀양 고교생의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수사의 잘못을 규탄하는 네티즌들의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피해 여학생에게 폭언한 경찰관의 징계와 풀려난 일부 가해자에 대한 재수사를 촉구했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학교와 가정 교육이 아주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음이 틀림없다. 학교 주변과 주택가에서 번창하는 향략산업과 인터넷에서 범람하는 포르노 사이트는 사춘기 학생들을 성범죄의 유혹에 빠지게 한다. 이러한 환경은 청소년들의 도덕과 윤리의식을 병들게 한다. 성적 올리기에만 매달린 학교도 이러한 문제를 방관하고 있고, 그렇다고 가정에서도 가르치지 않는다. 도덕적 잣대를 잃은 청소년들은 죄의식 없이 성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학교와 가정, 이 둘의 역할이 중요하다. 학교는 비행 가능 청소년에게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부모 역시 자녀가 학교에서 그리고 방과 후 무엇을 하는지, 교우 관계는 어떤지 지속적인 관심과 관찰을 해야 한다. 관심이 즉 애정이다.

그러나 비뚤어진 애정이 문제다. 나쁜 짓을 저지른 자식을 감싸는 것은 부모가 취할 자세가 아니다. 피해 여학생에게 '몸조심해라' '신고하고 제대로 사나 보자'고 협박했다니 그 자식에 그 부모라는 말이 십상이다. 병든 부모 밑에서는 병든 자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자녀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과 과보호는 그들을 그르치게 할 뿐이다.

경찰의 수사 또한 허점 투성이다. 위로는 못해 줄망정 어떻게 경찰관이 피해자에게 '밀양 물 다 흐려놨다'고 폭언할 수 있는가. 여자 경찰관의 조사를 받고 싶다는 여중생의 요구를 묵살하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대면한 상태에서 수사해 여중생이 욕설을 듣게 한 것은 용납될 수 없다. 경찰이 다시 한번 피해자를 죽이는 것이다. 몇 달 전 마련된 성폭행 사건 처리 지침은 여경의 담당과 비디오 증언을 규정하고 있다. 경찰청이 나서 사건을 재수사하고, 조사과정을 감찰해 책임자를 문책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