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는 전기 이상, 어제는 소화전 오작동 … 하늘길 언제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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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전남 고흥군 남열해돋이해수욕장에 나로호의 발사 연기 소식이 전해지자 한 관람객이 모래사장 위에 꽂아 둔 태극기 옆에서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9일 오후 5시로 예정됐던 나로호의 발사가 연기된 원인은 무얼까.

나로호 기체도, 발사대도, 중앙통제 시스템도 아니었다. 문제는 소화장비라는 의외의 곳에 숨어 있었다. 상상하기 싫은 시나리오이지만 소화장비는 만에 하나 나로호가 발사와 함께 폭발해 지상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작동하도록 돼 있다. 이것이 느닷없이 물을 뿜어댄 것이다. 소화 용수는 단순한 물이 아니라 나로호 연료에 붙을지 모를 불을 끄기 위해 특수 화학용제를 섞은 것이다.

상황은 이랬다. 이날 오후 1시58분. 발사대에 서 있는 나로호를 중심으로 세 군데에 세워진 소화장비 에서 느닷없이 물이 쏟아져 나왔다. 발사대에서는 기술진이 나로호 1단에 헬륨가스 충전을 완료한 뒤 나로호 2단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소화장비가 뜻밖에 작동하자 발사대 주변에서 발사 준비에 여념이 없던 기술자 두어 명이 황급하게 소화장비를 멈추려고 지하 기계실로 내려가려 했으나 문이 잠겨 당황했다. 발사대 주변은 소화장비가 멈춘 이후에도 한동안 소화용액이 흥건했고, 하얀 거품이 여기저기 풀풀 날렸다. 나로우주센터 관계자는 “전기 오작동으로 소화장비의 작동 스위치가 켜진 것”으로 추정했다. TV로 이 상황을 지켜본 사람들 중에는 “다른 부문도 아니고 소화장비가 잘못 작동해 국민적 관심사인 나로호 발사가 중지됐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분통이 터진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소화장비는 발사대 지상에 세워져 있으며, 분사구(노즐) 지름이 20㎝가량이다.

나로우주센터 기술진이 7일 나로호를 발사대에 세울 때도 발사대의 전기케이블에 이상이 발견됐다. 우여곡절 끝에 문제를 해결해 발사대에 세우기는 했지만 이를 지켜본 국민은 불안해했다.

소화장비 작동 여부와 관련해 예행 연습 때도 실제 물을 뿜어 보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기상으로만 정상을 확인한 뒤 그냥 넘어간 셈이다. 소화장비 작동은 매우 중요하다. 나로호 연료통에는 136t의 액체 산소와 케로신(등유)이 담겨 있다. 이것이 폭발하면 주변은 불바다가 된다. 2003년 브라질에서는 발사체의 고체 연료통이 터져 21명이 숨지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나로호 발사 연기가 이번으로만 끝나면 다행이다. 그러나 우주발사 전문가들은 이런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지난해 8월 나로호 1차 발사를 한 뒤 발사대를 한 번도 쓰지 않고 놔둔 데다 발사 15분 전부터 작동하는 ‘자동발사시퀀스시스템’도 가동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19일처럼 발사 몇 분 전, 또는 몇 초 전에 시스템의 자동 점검 과정에서 이상을 발견해 카운트다운을 멈출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 외국에서는 발사 1초 전에도 카운트다운이 중지된 적이 있다.

나로호 발사에는 고려할 일이 많다. 우선 나로호 자체뿐 아니라 통제시스템, 각종 비행 추적장치 등 지원시스템이 한 치 오차도 없이 모두 정상 작동해야 한다. 발사시간의 기상도 좋아야 하고, 나로호가 올라갈 우주에 우주 쓰레기나 외국 위성도 없어야 한다. 국제기구에 통보한 이번 발사 시한은 19일까지다. 이를 넘기면 발사가 한참 더 미뤄질 수 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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