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비과세·감세 남발해 나랏빚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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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국세청은 세금을 걷는 기관이다. 세율을 정하거나, 세금을 면제해주거나 하는 세금 제도나 법을 만들 권한은 없다. 세제는 정부나 국회의 몫이다. 국세청은 집행기관이다. 그래서 국세청은 세제에 대해선 이러쿵저러쿵 군말을 하지 않는 게 관례다.

그런데 백용호(사진) 국세청장이 9일 세제에 대해 이례적으로 가시돋친 말을 했다. 정치권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으로 흐르면서 비과세나 세금 감면 조치를 남발해 나라 곳간을 축낸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백 청장은 이날 서강대 최고경영자 과정인 오피니언리더스클럽 조찬 강연에서 “지난해 비과세·감면으로 덜 걷힌 세금이 30조원으로 국가부채의 10분의 1”이라고 지적했다. 비과세·감면제도란 특례를 적용해 특정 개인 또는 기업의 세부담을 덜어 주는 것을 말한다. 주로 저소득 근로자, 농어민, 중소기업의 세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도입했다.

문제는 이런 혜택이 어느 시점이 되면 없어져야 하는데도, 표를 의식한 정치권에서 계속 퍼준다는 데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비과세·감면 항목은 170여 개나 된다.

백 청장이 문제를 제기한 건 이 부분이다. 그는 “한국의 나랏빚이 늘어나는 속도가 빨라 재정 건전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정치권에서는 선심만 남발한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9.3%다. OECD 평균(100.2%)과 비교하면 건전한 편이다.

그러나 백 청장은 일본의 예를 들면서 한국도 마음 놓을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올해 일본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199.8%다. 나랏빚이 GDP의 2배에 달한다는 얘기다. 빚은 많은데 국민은 세금을 적게 낸다. 백 청장은 “일본 국민의 조세부담률은 18%로 OECD의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는 정치권의 선심 공세를 들었다. “너무 잦은 선거와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다 보니 선거 때마다 정치권이 표를 의식한 비과세·세금 감면을 쏟아내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이 지적한다”는 설명이다.

백 청장은 “세법 적용을 공정하게 하는 게 국세청의 운영방향”이라며 “숨은 세원을 찾아내고 비과세·감면만 해결해도 장기적으로 국가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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