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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별세한 이민우 전 신민당 총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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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9일 별세한 이민우 전 신민당 총재는 서민적인 풍모를 지닌 정치인이었다. 1999년 태릉의 한 아파트로 옮기기 전까지 고인은 지금은 재개발돼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서울 성북구 삼양동 산비탈의 세칸짜리 누옥(陋屋)에서 야당 총재시절을 포함해 30년을 살았다. 부인 김동분씨가 양계장을 하던 터에 지은 집이었다.

고인은 정치적 암흑기였던 80년대 초.중반 제1야당의 당수를 지내는 등 40년 외길을 걸은 야당 지도자였다.

15년 청주에서 태어난 그는 41년 일본 메이지대 법학과를 중퇴한 뒤 48년 고향인 청주에서 시의회 부의장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58년 4대 민의원으로 중앙 정계에 진입한 고인은 6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9대 국회 부의장도 역임했다.

85년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이 힘을 합쳐 재건한 신민당의 총재를 맡아 2.12 총선을 치르며 정치 생애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는 YS에게서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중구 출마를 권유받고 "어려운 일을 회피하면 위선자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라며 출마해 당선됐다. 신민당은 이 총선에서 67석을 얻었고 탈당파를 영입해 103석을 확보했다. 특히 득표율에서 여당을 앞질러 민주화를 추진할 수 있는 강력한 대안세력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직선제 개헌 논의가 절정으로 치닫던 86년 12월, 고인은 언론자유 보장.사면 복권 등 7개항의 민주화 조건을 선행할 경우 내각제 개헌을 수용할 수 있다는 이른바 '이민우 구상'을 발표했다. 87년 DJ.YS가 이에 반발해 탈당하면서 신민당은 껍질만 남았고,그는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 정계와 연을 끊고 조용히 말년을 보냈다.

신민당 총재 시절 대변인을 맡았던 홍사덕 전 의원은 9일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건 잘못 안 거여'라고 한마디할 뿐 누구를 탓한 적이 없는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빈소에는 김상현 전 의원 등 정치권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노무현 대통령과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손학규 경기도지사 등은 조화를 보냈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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