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걸친 꼼꼼한 준비 오늘의 神話 만들었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제 9권이 최근 출간, 개학과 더불어 다시 한번 서점가에 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해 어린이책 단행본 시장에서 교양학습만화 돌풍의 주역이었던 이 시리즈는 2000년 11월에 첫 출간된 이래 지난해 말 나온 8권까지 총 1백만권 이상 판매됐다. 20년 된 어린이책 전문 출판사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연간 매출액 1억원을 겨우 넘기던 가나출판사는 이 책의 성공으로 지난해 30여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만화책을 기획했으며 글까지 직접 쓰고 있는 이는 뜻밖에도 흰머리가 성성한 이광진(63)씨. 그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이윤기씨 책과 지난해 여름에 열린 그리스·로마 신화전(展)의 덕을 본 건 사실이지만 결코 시류에 영합해 만든 책은 아니다. 나 자신의 출판 인생을 마감하며 마지막으로 좋은 작품을 내겠다는 각오로 3년 전부터 준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그린 만화책들 중에서 특히 이 책이 성공한 비결은.
"교양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 자체에 매력이 있다. 아이들이 마치 순정만화 주인공 그림을 탐내듯 서점에 가서 주요 주인공이 크게 그려진 페이지를 찢어가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그래서 지난해 말엔 『캐릭터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까지 냈다. 나 역시 시나리오 쓰듯 각 권마다 극적 재미를 충분히 갖출 수 있도록 노력했다. 고급용지에 컬러를 이용해 차별화한 전략도 맞아 떨어졌다."
-만화가 홍은영씨의 역할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인데.
"우리 출판사의 '켈리의 영어만화'시리즈를 그린 여러 작가 중 신화의 아름다움과 힘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이를 물색한 결과 홍씨를 점찍었다. 다행히 홍작가도 이전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심을 두고 자료를 수집 중이었다. 만화책으로선 파격적으로 인세계약을 하자는 데 서로 의견이 맞았던 것도 완성도를 높여준 요인이라고 본다."
-원래 가나출판사 설립자로 알고 있다.
"1997년 경제대란 때 회사 소유권을 현 박영란 대표에게 넘겼다. 이후 고문으로 사무실 한 쪽에서 이 책의 기획에만 매달려 왔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특별히 관심을 둔 이유는?
"서양, 특히 유럽문명의 원류는 신화에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리스 로마 신화는 아는 사람도 없고 모르는 사람도 없다. 꼭 봐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제대로 끝까지 책을 읽은 사람도 없다. 어린이들에게 그 신화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관심을 갖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부 오류가 지적되긴 하지만 비교적 고증이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정석으로 통하는 토머스 불핀치의 책 외에 참고한 자료는 얼마나 되나?
"절판된 책까지 포함, 30여종의 그리스·로마 신화 관련 책들을 찾아 봤다. 어떤 등장인물이 어떤 책 몇 쪽에 나왔는지 인덱스까지 만들어 놨다. 다만 아이들 정서를 생각해 동성애·근친상간 관련부분이나 폭력적인 부분은 다소 수정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일본 출판시장을 지켜보면서 만화야말로 신세대를 끌어들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매개체라고 생각해 지금까지 고급교양학습만화 개발에 나름대로 노력해왔다. 다행히 박대표도 내 생각을 이어줘 『만화로 보는 빨강머리 앤』『만화로 보는 어린왕자』 등을 준비 중이다."
글=김정수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