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작전세력 경계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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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요즘처럼 주택경기가 좋을 때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은 다 돈을 벌까. 모르긴 해도 손해본 사람도 상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부동산 작전세력의 사기 행각에 넘어가 낭패본 사람도 엄청나다. 작전세력이란 특정지역의 부동산을 대량으로 사들이면서 붐을 일으킨 후 높은 값에 팔고 사라지는 집단이다. 이들은 재건축·재개발 대상지역은 물론 일반 아파트·분양권시장에도 파고 들어 시장을 왜곡하기까지 한다.
서울 한남·보광·이태원·동빙고·청파동 일대 낡은 주택시장이 작전 세력에 놀아난 대표적인 지역으로 꼽힌다. 작전세력이 노린 대상은 재개발지구에 포함되지 않은 대지면적 40~60평 규모의 헌 다가구주택. 이들은 가격도 비교적 싼 이런 집들을 사 가구별로 등기가 되는 다세대주택으로 용도변경한 뒤 비싼 값에 되판다. 땅 지분이 적을 수록 비싸게 받을 수 있는 재개발지역의 특성을 이용했다.
다가구를 다세대주택으로 바꾸면 가구당 땅 지분은 10평 이하로 평당 1천만~1천3백만을 받을 수 있다. 당초 산 가격은 평당 5백만~6백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단기간에 두 배 이상 튀기는 셈이다.
특히 이들은 지분 값을 비싸게 받기 위해 추가 작전도 구사한다. 매입한 지분을 앞세워 재개발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바람을 잡는다. 사업계획을 세워 시공사 선정 작업에 들어가는 흉내도 낸다. 재개발이 추진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값은 뛰게 마련이고 이들은 이때 지분을 팔고 사라진다.
이들은 이런 일을 치밀하게 진행하므로 일반 투자자들이야 속을 수밖에 없을 게다. 그래서 이들 지역에 투자한 사람은 오랫동안 자신이 속은 사실조차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서울시나 해당 구청에 문의하면 단번에 재개발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가 1998년에 발표한 서울시 재개발기본계획에 재개발예정지역이 다 표시돼 있기 때문이다. 재개발예정지역에 포함되지 않은 곳은 10년 뒤 기본계획을 다시 짤 때나 반영돼 재개발이 추진된다 해도 10년 이상 걸린다.
문제는 다가구를 다세대주택으로 바꾸는 바람에 재개발을 통해 지을 수 있는 아파트보다 주민이 더 많아 재개발사업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작전세력에 휘말린 지역은 용산 일대 낡은 주택가 만이 아니다. 서울 강남·송파·강동과 경기도 과천권의 주요 재건축아파트 단지들도 이들이 스쳐가면서 집값이 폭등해 상투잡은 사람도 적지 않다는 소리도 들린다. 집값이 뛰는 시기에도 이런 작전세력에 휘말리면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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