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미군 부대 소년 일꾼 … 베트남전쟁 땐 훈장 받은 미군 장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2면

6·25전쟁 때 미군부대에서 일했던 8세 소년이 미국에 입양된 뒤 베트남전에 장교로 참전해 무공훈장을 받았다. 지금은 자신의 영화 같은 인생을 소재로 소설을 쓰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사는 서승원(68·미국명 링크 화이트·사진)씨 이갸기다. 그는 이같은 사연을 담은 자서전 『치사이의 이야기』를 얼마전 출간했다.

서씨는 1942년 함경북도 나진에서 3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함남 함흥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던 가족은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지주라는 이유로 전재산을 빼앗겼다. 그러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그는 함흥에 진주한 미군 부대의 청소부로 일하게 됐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미군이 후퇴하게 되자 그는 그동안 모은 통조림을 부모에게 안긴 뒤 “열흘 뒤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열심히 일했던 나를 미군들이 데리고 가고 싶어했어요. 그때 손 흔들던 부모님의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서씨는 부대를 따라 부산·안동 등을 전전하다 51년 7월부터 미 10군단 기지에서 바텐더로 일했다.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한국 고유 스포츠인 씨름으로 미군들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54년 4월 만난 앨버트 트루먼 화이트 상사는 그런 성실성을 높이 샀다. 그래서 입양하고 싶다며 매일 영어를 가르쳤다. 12살 때인 이듬해 7월 미국 뉴저지 땅을 밟은 그는 링크 화이트라는 이름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양아버지가 64년 5월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는 이듬해 미군에 지원했다. “꼭 훌륭한 장교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훈련이 힘든 것으로 유명한 조지아주 사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장교로 임관한 서씨는 한국·독일·일본 등에서 근무한 뒤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 만났던 미군 상사들과 전장에서 재회하기도 했다. 그는 전공을 세워 동성무공훈장을 받았다. 그 뒤 전역한 그는 공무원을 거쳐 부동산 사업을 하다가 작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지금 전쟁 경험을 토대로 소설을 쓰고 있다. 부인 제니와 살고 있는 그는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 아들 한 명을 두고 있다.

“링크란 미국 이름은 한 잡지에서 따온 것이라고 해요. 연결을 의미하는 링크, 고마운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이름 덕을 톡톡히 본 것 같습니다.”

6·25전쟁 때 미군 위문공연을 왔던 영화배우 테리 무어와 한국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도 그가 미군부대 바텐더 시절 인연을 맺은 소중한 사람들이다. 서씨의 사연은 SBS 현충일 특집 다큐멘터리 ‘태평양 너머의 기억들’(6일 오전 10시35분 방송)에 소개될 예정이다.

워싱턴 지사=이성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