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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의 눈물, 그리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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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난주 서울 국회의사당 내 도서관 증축 공사 현장. 아파트 10층 높이의 타워 크레인 꼭대기에서 네 명의 비정규직 대표가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한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비정규직 철폐"를 외쳤던 이들은 7일 만에 내려왔지만, 이들이 속한 '비정규직 노조 대표자 연대회의' 간부들은 여전히 심한 속앓이를 하고 있다.

한두 명의 구속은 각오한 일이었지만 농성 기간에 타워 크레인이 멈춰서면서 공사장 일을 못했던 일용직 건설 근로자들의 피해가 가슴을 때리기 때문이다. 이 단체 관계자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일용직의 어려움을 잘 알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며 "이들의 마음을 풀어준 뒤 비정규직 법안 저지 운동을 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 올라가 있는 비정규직 법안의 골자는 파견 직종을 늘리고, 파견.임시직 기간을 늘리며, 정규직과의 차별을 막는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취지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노동계는 이에 대해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을 보장하지 못한다"며 거세게 반발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5일 MBC 라디오 프로그램 '여성시대'에 출연, "경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으로라도 비정규직 급여를 정규직과 너무 차이가 나지 않도록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법으로 임금을 올리면 전체 근로자의 32%(460만명.통계청 추계)를 차지하는 비정규직의 고용환경이 나아지고, 노동시장의 윗목과 아랫목이 동떨어져 있는 '양극화'가 해소될 수 있을까.

노 대통령의 아이디어는 노동시장에 싼 임금의 근로자가 많지 않을 때는 확실하게 먹힐 수 있다. 비정규직으로 일하겠다는 사람이 적은 상황에서는 기업들이 비정규직 월급을 올려주고라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태백(이십대의 태반이 백수), 사오정(사십오세에 정년)'이라는 조어가 유행하는 현실에서는 이런 법이 근로자를 돕기는커녕 눈물을 자아낼 수 있다.

'살아남아야 하는 게' 급선무인 기업은 비정규직 인건비 부담이 늘어날 경우 설비 자동화나 아웃소싱 등으로 비정규직 일자리를 없애거나 뒤틀린 방식으로 운용하려 들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그나마 있던 일자리마저 사라져버릴 가능성이 큰 까닭이다.

'악덕 고용'을 막기 위한 최저임금법도 실제로는 노동시장 맨 아래 구직자의 설 자리를 더 좁힌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미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 법이 이득을 주지만,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라도 일자리를 얻으려는 구직자에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가야 할까. 그 실마리를 오랜 세월 자생력을 지녀온 서울 동대문.남대문 시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본다.

시장의 경우 장사가 안 되면 개별 상점뿐 아니라 전체적으로도 원인을 따져 보는 것처럼, 비정규직 해법도 문제의 뿌리를 파악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비정규직이 늘어난 건 '정규직의 과도한 보호와 힘에 의한 노사관계로 인해 정규직 채용을 기피하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그런 만큼 정규직이 비정규직에 '양보'함으로써 매듭의 한 끝을 풀어볼 수 있다.

정부가 굳이 규제책을 만든다면, 시장에서 상인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규칙만 따르는 것처럼, 고용자나 근로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접점을 찾는 것이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원천적으로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고 일자리가 모자라는 데서 생겨난 '증상'이다. 따라서 기업과 근로자가 안정된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정부는 시장원리와 어울리는 경제정책을 펼 때 근본적으로 치료될 수 있다.

이영렬 경제연구소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