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누가 깃털이고 누가 몸통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김대중 대통령 처조카인 이형택(李亨澤)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의 보물선 사업 개입 의혹이 점입가경이다.

발굴 수익의 15% 약정에서 의혹이 출발하더니 국정원.군 당국을 상대로 한 로비활동과 산업.한빛은행에 대한 대출 및 대출보증 압력설로 번지면서 점점 사실로 다가서는 느낌이다. 자고나면 매일 새 혐의가 추가되고 있으니 이용호 게이트는 이형택 게이트로 주인공을 바꿔야 할 지경이다.

이형택씨가 접근한 기관들을 보면 그의 로비 대상이 무차별 전방위였음을 알 수 있다. 보물선 사업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닌 것이다. 특히 국정원이나 군 간부는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특수직이란 점에서 李씨가 대통령 처조카라는 신분을 십분 활용했을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李씨의 로비 대상이나 활동 내용이 일개인의 호가호위(狐假虎威)만으로 가능했을까. 발굴 허가 취득부터 발굴작업 지원 요청, 금융기관의 수백억원 대출.보증 알선까지 배후.비호 세력 없이 李씨 혼자 했다고는 보기 힘든 대목이 너무 많다. 자질구레한 일까지 챙기고 직접 쫓아다닌 李씨가 몸통보다는 깃털에 가까워 보인다는 게 우리들만의 생각일까.

특검은 비리 못지 않게 배후.비호 세력도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 정치권력 사건 수사 때마다 검찰이 비난을 받은 이유가 바로 실세 연루 사실을 의혹만 남긴 채 흐지부지했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 간부가 "지난해 李씨의 계좌추적을 안 한 것은 신분을 고려한 측면도 있다"고 봐주기 수사를 사실상 시인했으니 특검의 성역없는 수사는 더욱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청와대 오홍근 대변인이 이 의혹사건을 청와대와 무관하다고 강조한 것은 적절치 못했다고 본다. 친인척 관리 잘못도 결국은 대통령의 허물일 수밖에 없고 또 한창 수사 중인 특정 사안에 대해 청와대가 앞장서 선을 긋는 것은 수사에 부담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알아야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