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월드컵] 2002년 6월 IT가 진화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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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 장면1:2002년6월4일 오후9시 서울 신촌.

대학원생 정석훈(29)씨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대형 빌딩에 설치된 전광판에서 한국과 폴란드의 경기가 중계되는 것을 본 그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휴대폰으로 경기 현황을 보기 위해서다.

10분 뒤 약속장소에 도착한 그는 이번엔 무선랜이 설치된 친구의 노트북PC로 경기를 지켜보았다. 두 사람은 다른 나라의 경기가 궁금해 국제축구연맹(FIFA)과 야후가 관리하는 월드컵 공식사이트에 접속했다.

경기가 한국의 승리로 끝난 뒤 번역 사이트에 접속, 우리나라의 경기 내용을 자랑하는 문장을 쓰자 일본어로 자동 번역돼 나왔다. 두 사람은 이 글을 일본의 축구 전문 사이트 게시판에 옮긴 뒤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 장면2:같은 날 오후5시 서울 삼성동 코엑스.

축구 매니어인 유진호(26.회사원)씨는 코엑스에 있는 국제미디어센터(IMC)를 오가는 외국 기자들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길거리에서 노트북을 이용해 기사를 보내는가 하면 호텔 공중전화에서도 노트북PC로 인터넷에 접속했기 때문이다.

길을 걷던 그에게 한 외국인이 중국어로 말을 걸었다. 개인휴대단말기(PDA)를 꺼내 외국인의 말을 입력하자 바로 한국어로 번역돼 나왔다.

"상암동 주경기장까지 자동차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합니까."

그는 PDA의 지리정보시스템(GIS)을 검색해 길을 알려준 뒤 인근 디지털캠코더 쇼룸으로 달려가 중계방송을 지켜보았다. TV에선 부산 경기장에서 디지털카메라로 연신 셔터를 눌러대던 카메라 기자들이 앉은 자리에서 초고속인터넷(2Mbps의 속도)으로 사진을 전송하는 장면이 클로즈업된다.

주요 정보기술(IT)업체들의 서비스를 바탕으로 축구 매니어인 두 젊은이의 2002년 6월 하루를 그린 가상 상황이다.

오는 5월 31일 개막되는 월드컵은 IT업체의 경연장이 될 전망이다. 주요 업체들이 월드컵을 마케팅의 기회로 판단, 첨단 제품과 서비스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각축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1998 프랑스 월드컵과는 달리 2002 월드컵은 'e-월드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SK텔레콤.LG텔레콤 등 이동통신업체들은 대회 전까지 휴대폰으로 문자와 e-메일은 물론 동영상까지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상용화할 계획이며 FIFA공식파트너인 KT(옛 한국통신)는 각 경기장에 무선랜 등 첨단 인프라를 갖출 예정이다.

월드컵 기간 중 디지털방송.고선명(HD)TV중계.인터넷방송 등 첨단 서비스도 선보인다.

정보통신부는 10개 월드컵 개최도시와 IMC 등 20여곳에 '월드컵 프라자'를 만들어 놓고 가로 11m, 세로 7m짜리 대형 '3D TV'를 설치할 예정이다. 이 TV는 특수안경을 쓰고 보면 화면이 입체로 느껴지는 첨단 제품.

이렇게 IT업체들이 월드컵 마케팅에 뛰어드는 이유는 2002 월드컵이 관람객만 3백50만명에다 시청인구는 연인원 4백억명을 넘어설 정도로 파급효과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월드컵과 관련한 총지출이 3조4천억원에 이르며, 이로 인한 파급효과가 5조3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민간부문의 투자까지 포함하면 11조원대의 생산유발 효과가 기대된다.

전문가들은 88년 서울 올림픽이 우리나라 IT산업의 수준을 10년 이상 앞당겨 도약의 발판이 됐다면, 이번 월드컵은 우리나라 IT산업이 성숙기로 들어가는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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