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 경제는 백약이 무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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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금 우리 경제를 두고 "백약이 무효(無效)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정부가 경기를 살려보겠다고 애를 써도 투자와 소비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박 회장은 "정부 관료들도 지난 20년간 이렇게 정책효과가 없는 것은 처음이라고 토로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제가 무슨 처방을 써도 약효가 나타나지 않는 총체적 무기력 상태에 빠졌다는 얘기다.

박 회장은 그 원인의 하나로 정치권과 정부가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경제의 주체인 기업을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옥죄는 법을 만들고 있는 것을 들었다. 한편에선 기업더러 투자를 늘리라면서 다른 한편에선 투자를 막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가 안 일어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부자들이 돈을 쓰게 할 특효약이 있는 사람은 스승으로 모시겠다"며 소비를 독려하고 나섰다. 그러나 실제 정부가 추진해온 정책들은 부자들의 지갑을 더 닫게 만들고 있다. '경제를 살리자'는 주장과 '경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정책이 엇갈리다 보니 남는 것은 혼선과 불확실성뿐이다. 경기가 백약을 써도 잘 풀리기 어려운 이유다.

우리 경제가 이미 심각한 무기력증에 빠졌다는 것은 많은 국민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지난 2일 MBC가 여론조사기관을 통해 벌인 조사에서 응답자의 64%가 '현재의 경제상황이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위기'라고 답했다. '어렵기는 하지만 위기는 아니다'라는 응답은 33%에 불과했다. 혼선과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경제의 무기력증을 벗어나는 길은 바로 혼선을 바로잡고, 불확실성을 걷어내는 것이다. 투자를 늘리려면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와 법을 만들지 말 것이고, 소비를 늘리겠다면 소비를 위축시키는 정책을 쓰지 말아야 한다.

경제를 살리겠다면 '경제 살리기'를 국정운영의 최우선 순위에 놓고 각종 정책을 조율해 가면 된다.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개혁이 우선이니 당분간 경제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솔직히 말하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