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남북 정상회담 대통령 인식 옳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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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이 영국 방문 중 "북핵 6자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남북 정상회담의 가능성이 매우 낮다"며 "이런 일에 그렇게 노력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다. 6자회담의 틀이 가동되는 한 정상회담을 추진할 의향이 없음을 분명하게 천명한 것이다. 북핵 문제가 안고 있는 국제정치적 미묘함을 감안할 때 노 대통령의 인식은 옳은 방향이라고 본다.

그동안 정부와 여권 내에선 정상회담을 둘러싸고 혼선이 끊이지 않았다. 이부영 열린우리당 대표가 "내년에 정상회담이 반드시 열려야 한다"고 해 '뭔가 있는 것처럼' 발언하면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나오기 직전에도 "내년 정상회담 성사를 기대한다. 특사의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엇박자 나는 발언을 했다. 여권 내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흘러나오니 국민의 혼란만 가중돼 왔다. 야당으로부턴 '정치에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렀다. 노 대통령의 발언으로 이 같은 혼선이 가닥 잡힌 점도 다행이다.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에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언젠가는 개최돼야 한다. 그러나 민족의 운명이 걸려 있는 중차대한 사안인 만큼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 투명성이 결여돼서도 안되며, 특히 6자회담 관련국과의 조율도 중요하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열린 한.미 정상회담 등에서 북핵문제는 6자회담 틀 내에서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하겠다고 천명했다. 그 기본구도를 우리 쪽에서 흔들어선 안된다. 물론 정상회담이 장차 북핵 해결의 한 과정일 수는 있다. 그러나 6자회담의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개최된다면 관련국, 특히 미국과의 공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양보할 수 없는 과제'로 삼고 있는데 반해 남북 정상회담에선 북핵 문제가 뒷전으로 처질 수 있다. 북한이 미국과만 논의하겠다고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정부와 정치권도 남북 정상회담 문제에 대한 보다 성숙한 접근이 이뤄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