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엔론 게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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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해가 바뀌어도 '게이트'기사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도 최근 폭발성이 강한 게이트가 하나 떴다. 이름하여 '엔론 게이트'.

엔론은 한달여 전 도산한 미국 최대의 에너지기업이다. 연간매출 1천억달러(약 1백30조원) 규모의 거대기업 엔론은 지난해 10월 당국이 회계분식 여부 조사에 착수했다는 발표가 나온 후 불과 6주 만에 무너졌다. 시장과 임직원.투자자들을 강타한 엔론 붕괴의 여진은 이제 미국의 심장부를 향하고 있다.

첫번째 타깃은 엔론이 4년씩이나 우리 돈으로 6천억원대의 흑자를 부풀렸는데도 이를 찾아내지 못한 회계법인들이었다. 회계감사를 맡았던 아서 앤더슨을 비롯, 업계를 대표하는 이른바 '빅5'가 뭇매를 맞았다. 미 증권당국에 따르면 1990년대 후반 이후 투자자들이 기업의 회계조작으로 본 피해가 1천억달러를 넘는다니 회계법인들의 코가 납짝해질 만도 하다.

엔론 여진의 두번째 타깃이 엔론게이트다. 워터게이트를 파헤쳤던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미국의 유력 언론들은 지난해 말부터 엔론과 정치권의 유착관계를 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엔론의 케네스 레이 회장과 임직원이 지난번 대통령 선거전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 진영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기부했으며, 부시정권 출범 후 에너지정책 결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아직은 의혹 수준일 뿐 위법성이나 대가성이 드러나지는 않았다.

엔론게이트는 지난주 미국 상원이 오는 24일부터 청문회 실시를 결정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청문회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청문회를 주도할 민주당의 조셉 리버먼 의원은 앨 고어의 러닝 메이트로 지난번 대선에서 부시측과 맞싸운 인물. 그는 "사실확인을 위한 것일 뿐 마녀사냥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고 말하지만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대 테러전쟁 승리로 지지도가 치솟은 부시 진영은 자신만만한 모습이다. 혐의 입증이 어려운 데다 민주당도 공화당보다는 적지만 엔론의 정치자금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닉슨도 워터게이트 파문이 확산돼 상원이 청문회를 실시하기 직전인 73년 4월 말 대국민연설을 통해 "백악관에서 은폐는 결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하지 않았던가.부시 대통령이 과연 엔론 관문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 주목해보자.

손병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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