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격동의 시절 검사 27년 (2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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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검사의 길

15. 김성재 검사장과 이별

내가 영등포지청에서 영등포 수도사업소 사건을 수사하면서 김성재(金聖在) 서울지검장에게 항명한 일로 장흥지청으로 좌천된 것이 1972년 봄이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나 내가 대검 연구관으로 근무하던 79년, 서울고검장이던 김검사장은 검찰을 떠나게 됐다. 나는 작별인사를 위해 서소문 대검찰청사 11층에 있던 서울고검을 찾았다.

이에 앞서 장흥으로 귀양길에 올랐던 나는 장흥지청에 도착하자마자 가지고 간 타자기로 내가 왜 이곳에 오게 됐는지 좌천 이유가 무엇인지 하루종일 기차와 자동차를 타고 오지(奧地)로 떠나온 젊은 검사의 심경은 어떠했는지를 단숨에 쳐내려갔다. 그렇게 쓴 3~4장의 편지를 다시 읽지도 않고 김검사장에게 보냈었다.

검사를 그만 둘 마음을 먹고 써 내려간 사연이었으니 정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데다 감정이 격해 있어 구체적으로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가 확실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 데 이렇게 가혹하게 할 수 있는가'라는 불만을 토로한 뒤 '검사직에 환멸을 느껴 곧 사직하겠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장흥에 내려간 뒤 홍순욱 지청장의 간곡한 설득에 하루 이틀 장흥에 머무르다 결국 1년의 세월을 보내게 됐지만 편지를 쓸 당시는 검사직에 대한 미련이 거의 없었다.

그런 탓에 장흥지청에 부임했으면서도 광주고검과 지검에 부임 신고를 가지 않았다. 당시 광주지검장은 '호랑이 검사'로 소문난 김병기 검사장이었다.

부임한지 두 달이 지나도록 지청의 평검사가 본청 검사장에게 신고도 오지 않으니 하루는 검사장이 홍지청장에게 전화를 했다.

"왜 전입 온 검사가 신고하러 오지 않느냐"고 호통을 친 모양이었다. 홍지청장도 그제서야 내가 본청에 신고를 가지 않은 사실을 알고 바람도 쐴 겸 광주에나 한 번 다녀오라고 말했다.

그래서 하루 날을 잡아 광주고검과 지검을 찾았다. 김병기 검사장은 생각보다 크게 나무라지 않고 "서울에 출장갔을 때 김성재 검사장이 '좋은 검사니 잘 지도해 주라'고 부탁했다"며 위로해 주는 것이었다.

이어 김성재 검사장이 내 편지를 받고 상심했다는 말도 전해 줬다. 나는 나중에 김성재 검사장으로부터 그 편지를 집으로 가져가 부인에게 보였다가 젊은 검사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면서 혼났다는 말을 직접 들었다.

그 편지 때문에 신경이 쓰였던지 김성재 검사장은 홍순욱 장흥지청장을 통해 "출장 등으로 서울에 올 일이 있으면 내 방에 한 번 들르라"는 말을 전해 왔다.

솔직히 내키지 않았지만 서울에 출장을 갔을 때 김성재 검사장의 집무실에 들러 오랜만에 인사를 했다. 그 날 김성재 검사장은 퇴근후 일식집으로 나를 불러 시골 생활에 고생이 많다며 정종 대포를 사주었다.

어쨌든 그 일을 계기로 김성재 검사장과 나는 화해했고, 간혹 상사에게 그런 방법으로 내 의사를 관철하려 했던 것이 옳았는지 더 좋은 방법은 없었는지 자문하게 됐다. 이후 서울에 올라갈 때면 김성재 검사장의 방을 찾곤 했다.

그러던중 김성재 검사장이 헌법위원회 상임위원이 돼 검찰을 떠나는 마당에 송별인사를 하러 간 것이다. 내가 간 시간이 한가한 때였던지 김성재 검사장이 혼자 있었다. 나는 검찰을 떠나는 그분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김검사장은 나를 장흥으로 보냈던 일을 후회하면서 "내가 검찰에 계속 있어야 김검사에게 진 빚을 갚을 텐데…"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서로 쳐다보기 민망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헌법위원회 상임위원은 장관급이고 앞으로도 더 승승장구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검사장은 "나는 이제 game set 인생인데 뭘…"이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김검사장의 'game set 인생'이라는 말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결국 우리 인생은 게임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기가 좌천시켰던 후배의 항의편지를 보고 감상적이 될 수 있었고 그 후배와의 화해를 위해 정종을 사주던 그 때의 검찰, 그 시절의 선후배 그 아름다운 분위기가 그립다.

김경회 <전 한국 형사정책 연구원장>

정리=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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