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동춘서커스단 박정현·최연정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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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우리들에겐 요즘처럼 추운 겨울은 고통이죠. 무대에 서는 게 어설프고 관객이 별로 없어 잠자리 등 모든 것이 불편합니다."

국내 유일의 현역 곡예사 부부인 동춘서커스단의 박정현(33).최연정(25)씨.

이들은 중국 기예단 출신 18명 등 단원 50여명과 함께 두달 전부터 광주시 용봉동에 대형 천막을 치고 공연 중이다. 폭 2.5m, 길이 3m의 이동식 컨테이너 안에서 지낸다. 옷장.냉장고.TV 자리를 빼면 딸(4).아들(3)을 합쳐 네 식구가 겨우 누울 수 있는 공간이다. 전기 장판.난로의 온기로 버텨야 하는 이들은 추위가 엄습하면 '부초(浮草) 같은 인생'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서커스의 꽃인 공중비행 조장으로 높이 12m의 그네 위에서 연기하는 朴씨는 열다섯살 때 서커스와 인연을 맺었다. 광주시 송정동에서 살던 그는 가출해 떠돌다 광주에서 공연 중인 한 서커스단을 따라 나섰다.

"당시엔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하는 것만도 큰 일이었잖습니까. 청소부터 시작해 줄타기와 자전거 묘기 등을 한 가지씩 익혀 무대에 서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는 대우서커스단에서 활동하던 1997년 崔씨를 만나 살림을 차렸다. 충남 장항군 태생인 崔씨는 4남매를 어렵사리 키우던 어머니의 손을 잡고 서커스단에 입단, 곡예사의 길을 걸었다.

그녀의 특기는 누워서 다리로 통.항아리를 굴리거나 7m의 사다리 위에 사람을 올리는 것. 공중 줄타기와 외발 자전거 묘기도 일품이다. 부부는 이것 저것 떼고 나면 매월 2백50만원 정도를 손에 쥔다. 손님이 기대 수준을 넘을 때는 1인당 하루 2만원의 수당을 받을 수 있다.

"한두 달마다 장소를 옮기며 공연하다 보니 애들을 제대로 교육시킬 수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지요."

崔씨는 "애들이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이 생활을 청산한 뒤 한 곳에 뿌리를 박고 살고 싶다"고 말했다.

朴씨 부부가 소속된 동춘서커스단의 역사는 70여년. 1960년대만해도 서커스단이 20여개 있었고 곡예사 부부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자식에게 대를 잇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TV.영화 등에 밀려 서커스가 인기를 잃으면서 하나둘씩 천막극장을 떠났다. 서커스단은 동춘.대우 두개밖에 없으며 부부 곡예사는 朴씨네뿐이다.

朴씨는 "서커스가 외국에선 예술로 대접받는다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옛 인기를 되찾았으면 좋겠다"며 "올해는 아내에게 면사포를 씌워 주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광주=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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