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왕 체포 나선 자메이카 군·경과 목숨 내놓고 싸우는 빈민가 주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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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극악 무도한 마약왕인가, 아니면 빈민을 구제하는 의적인가’.

자메이카 정부가 미국 정부의 범죄인 인도 요청에 따라 체포에 나선 크리스토퍼 코크(사진)는 세계 최대 마약왕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지 주민들은 그를 현대판 ‘로빈 후드’로 여기며 지지하고 있다고 AFP통신 등 외신들이 27일 보도했다.

갱단과 나흘째 격렬한 총격전을 벌이는 군·경은 26일(현지시간) 코크의 근거지이자 극빈층들이 모여 사는 수도 킹스턴의 슬럼가인 티볼리 가든스 일대를 장악했다고 주장했다. 킹스턴에선 전날 코크를 체포하려는 군·경과 코크의 지지자들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져 60여 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아직 코크를 잡지 못한 데다 주민 상당수는 ‘두두스’라고 불리는 코크에 대한 굳은 충성심을 보이고 있다.

코크의 지지자들은 브루스 골딩 자메이카 총리가 미국의 요구에 따라 그를 체포하겠다고 밝힌 지난주부터 티볼리 가든스 일대로 몰려 들었다. 청바지 차림에 총으로 무장한 젊은 남성들이 주축이 된 이들은 코크가 빈곤층들이 몰려 사는 서부 킹스턴에 각종 지원과 보호를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킹스턴에 뿌려진 각종 혜택은 미국이 인도를 요구하기 전까지 누구도 손대지 못했던 마약 범죄를 통해 얻은 것이라는 게 미국 정부의 주장이다.

미국 검찰에 따르면 자메이카 최대 갱단인 ‘샤워 포시’를 이끈 레스터 코크의 아들인 크리스토퍼는 1990년대 중반부터 뉴욕에서 코카인을 밀거래해 거액을 벌었다. 한때 코크와 결탁했던 골딩 총리는 미 정부의 요청에 9개월간 버티다 결국 지난 23일 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코크의 체포를 지시했다. 이번 유혈 충돌 과정에서 서부 킹스턴에서만 민간인 시신 수십 구가 발견되면서 정부와 현지 주민 간 갈등이 더 깊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부 킹스턴을 둘러본 자메이카의 헤로 블레어 주교는 이 지역에서만 민간인 시신 44구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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