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 '뽀샵질' 7단계까지 손댔다간 감점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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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길 기자가 체험한 ''뽀샵'' 1단계와 7단계 비교


지난 20일 오전 서울 창천동의 한 사진관. 대학생 선우기혁(27·숭실대 경제학과 4학년)씨와 같은 과 동기 박민규(25)씨가 정장 차림으로 들어섰다.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은 이력서에 붙일 사진을 찍기 위해 학교 앞 사진관을 두고 이곳에 왔다. 구직자 커뮤니티에서 ‘증명사진 뽀샵(보정) 잘 나오는 곳’으로 소문났기 때문. 선우씨는 “나를 알리는 첫번째 사진이니까 신경 써서 찍어야 한다”며 옷 매무새를 정리한 뒤 렌즈 앞에 섰다.

“찰칵!”
선우씨는 자신의 평소 얼굴보다 더 잘 나오게 하기 위해 보정을 결심했다. 선우씨는 “보정 단계를 높여 얼굴 사진을 수정했다. 마음이 뿌듯하고 (취업이 잘 될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뽀샵’. 이미지 수정용 컴퓨터 프로그램인 '포토샵'의 약어다. 좀더 잘 생기게 보이기 위해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얼굴 사진을 포토샵으로 수정한다는 의미다. 최근 대학가 사진관에선 구직자 요청에 따라 증명사진을 1단계부터 7단계까지 단계별로 보정해 준다. 얼굴에 난 점이나 잡티를 없애는 기본 단계부터 얼굴 전체 크기를 조정하는 고난이도 단계까지 다양하다. 보정을 거치면 ‘본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기자가 직접 체험해봤다.

#사진 속 나는 내가 아니었다!

전날 저녁 술자리 때문에 피곤함이 얼굴에 가득했다. 당연히 환한 미소도 지을 수 없었다. 사진사가 ‘하나, 둘 셋’을 세었고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보정 1단계 작업이 시작됐다. 셔츠 깃이 반듯하게 세워졌고 얼굴 잡티가 하나씩 지워졌다. 2~3단계에선 얼굴 크기가 줄어들었고 오똑한 콧날이 그려졌다. 4단계에선 눈이 커졌고 눈빛이 반짝였다. 5단계. 사진사는 기자의 얼굴 크기를 한번 더 줄였다. 어깨가 더 넓어보이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6단계에선 턱선이 날렵해졌고 안경테 그림자도 사라졌다. 마지막 7단계,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면서 눈·코·입·머리카락·어깨 등을 최종적으로 다듬는다. 앗, 내가 ‘나’가 아니다.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든다면 어디든 붙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취업 효과는 있을까?

7단계를 거친 ‘뽀샵’ 사진은 취업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이력서 사진이 취업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전했다. 특히 ‘뽀샵’ 사진은 때론 감점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웅진그룹 인사팀 한 관계자는 “서류전형이나 면접 때 외모를 보고 뽑지 않는다”며 “요즘엔 ‘뽀샵’을 심하게 한 사진을 내는데 별로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LG텔레콤 인사팀 한 관계자는 “오히려 ‘뽀샵’이 지나치면 면접관에게 긍정적인 첫인상을 주기 힘들다”고 말했다.

#자신감 있는 표정부터 살려라

그러나 구직자가 체감하는 현실은 다르다. 선우씨는 인터넷 취업 카페 등에서 “증명 사진을 ‘뽀샵’하고 취업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읽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구직 커뮤니티에는 ‘보정 잘하는 사진관 리스트’ ‘승무원 시험을 보려면 최대한 V라인으로 뽀샵을 해야 한다’는 내용들이 공유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진 보정보다는 자신감 있는 표정을 연습하라고 조언한다.
유희 이미지파트너즈 대표는 “요즘엔 인사담당자들이 이력서 사진과 실물을 비교한다. 많이 다르면 진실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딴사람이 왔네’ ‘본인 맞습니까’ 묻기도 한다”며 “이런 질문에 당황해 자신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점이나 잡티를 제거하거나 눈매를 또렷하게 하는 약간의 보정은 필요하겠지만 얼굴선이나 눈 크기 등을 지나치게 보정하면 본인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자신의 외모에 자신감 있는 모습, 활짝 웃는 모습을 평소 연습해 사진에 대입해야 한다. 인사담당자들은 이런 모습을 금방 알아차려 좋은 점수를 준다”고 말했다.

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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