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남 커플’아들 대하는 두 가족의 태도, 당신이라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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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남·남 커플로 출연하는 송창의(왼쪽)·이상우. [SBS 제공]

“셀 수 없이 죽고 싶었대. 그거면 됐어 여보 안 그래? 엄동설한 산 속에 우리 애 발가벗겨 세워놓지 말자. 바람막이 쳐주고 옷 든든히 입혀 우리가 난로가 되자.”(어머니 역 김해숙) 23일 밤 “한국대중문화사에 길이 남을 순간”(미술평론가 임근준씨가 트위터에 남긴 소감)이 안방극장을 몰아쳤다.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아들 태섭(송창의)이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것이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이게 저에요”라는 아들의 고백에 부부는 서로 끌어안고 눈물만 흘렸다. 안타까운 단 한마디 “정말 바꿀 수 없는 거니?”(아버지 역 김영철)에 시청자도 눈시울을 적셨다.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이하 ‘인생은’)가 분수령을 넘었다. 50부작 중 20회에서 4대 가족의 장손이 게이임을 공식화한 것이다. ‘인생은’의 주요 시청자는 40대 이상 남녀로, 전체의 65%가 기성 부모 세대에 해당한다(AGB닐슨미디어리서치).

◆‘가족’ 이름으로 동성애 껴안다=보수적인 안방극장에서 동성애라는 이슈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이는 ‘인생은’ 초반부터 최대 관전포인트였다. 김 작가는 “편견 없이 그릴 것”이라며 “거북하지 않게 받아들여지도록 해볼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거북하지 않은 방식’은 가족애라는 필터로 구현됐다. 바람 피운 노부(老父)의 귀가, 맞벌이 부부의 낙태 등의 갈등을 먼저 풀어갔고, 이 과정에서 4대 가족의 끈끈한 사랑을 부각시켰다. 화목한 가족 속에서 태섭의 고통은 도드라져보였다. “죽도록 외로웠다”는 아들에게 “남의 일로만 생각했다”고 눈물 짓는 부모의 심정은 시청자에게 그대로 전이됐다.

이는 태섭의 연인인 경수(이상우) 가족과 대비되며 현실성을 얻었다. 경수 모친(김영란)은 아들을 괴물처럼 여기고 ‘집안의 수치’라며 정체성 전환을 호소해 왔다. 두 가족의 혼란과 포용을 나란히 드러냄으로써 사회적 눈높이를 맞춘 것이다. 그간 이성애 로맨스의 들러리로 활용됐던 동성애가 ‘사회적 실체’임을 커밍아웃한 셈이기도 하다.

◆게시판엔 뜨거운 논란=방송 직후부터 드라마 게시판엔 1000여건의 글이 올랐다. “초등학교 6학년 딸과 함께 보며 동성애자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는 이숙영씨는 “최소한 가족이라면 보듬어야 하지 않겠나 하고 생각했다”는 의견을 남겼다.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밝힌 신경순씨는 “커밍아웃 했을 때 따가운 시선들이 떠올라 드라마 보면서 많이 울었다”고 했다. 대부분 “가슴 아파 같이 울었다”는 소감이지만, 일부는 동성애 조장이라며 방영 중단을 요청하기도 했다. 인터넷에선 기독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SBS에 항의전화 걸자”는 의견도 올라왔다.

반면 진보적 기독교인으로 이름 난 김두식 교수(경북대 로스쿨, @kdoosik)는 “커밍아웃을 대하는 가족들 태도의 모범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며 드라마에 지지 의사를 밝혔다. 정신과의원장 정혜신 박사(@mindjj)는 “오늘 드라마는 한판의 치유 세션이었다”며 “우리나라 성적소수자 인권에 엄청난 기여를 한 것”이라고 평했다.

작가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소수자의 입장을 좀 더 헤아려야 한다는 입장도 있었다. 미술평론가 임근준씨(@ChungwooLee)는 “커밍아웃할 때 죄지은 자의 태도를 취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은 현명치 않다”며 “듣는 상대도 동성애자 정체성을 그런 식으로 받아 들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인생은’의 이날 시청률은 19.3%(AGB닐슨)로 자체 최고기록을 세웠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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