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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den Champions - 세계를 지배하는 작은 기업 ④ 나노신소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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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나한테도 기술이 있지 않은가. 회사를 세워 제자들에게 일자리를 주자.”

나노신소재, 2000년 2월 그렇게 세워진 기업이다. 충북 청원 부용공단에 자리를 잡았다. 10년이 지난 지금 LCD·태양전지·터치스크린 등의 원료인 나노 물질을 만들어 미국 3M 등 세계 유수기업에 공급하는 회사가 됐다. 제품의 90%를 수출한다.

충북 청원 부용공단의 나노신소재의 연구원들은 지분 1% 안팎을 가진 회사의 ‘주인’이다. 주인의식이 발동된 것일까. 밤새워 연구해 전 세계 경쟁업체보다 한발 앞서 기술을 개발한 경우가 많다. 사진은 신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지금도 사장은 ‘그때 그 교수’가 겸하고 있다. 한밭대 박장우(응용화학과) 교수다. 사업은 당시 대학원 석사과정을 갓 마친 제자 3명과 함께 교내 창업보육센터 안에서 시작했다. 브라운관 TV나 모니터 표면에 뿌리는 ‘전자파 차폐액’을 만드는 사업이었다. 전자파를 막아주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크기의 물질(나노 물질)이 든 용액이었다.

당시는 일본 업체만 차폐액을 만들었다. 국내 전자업체들이 차폐액을 전량 일본에서 수입해 썼음은 물론이다. 이게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는 제품이란 사실, 박 교수가 한밭대에 오기 전 기업 연구소에 있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나노 물질이 든 ‘분산액’의 가격이 L당 150달러. 하지만 원료비는 1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일본산의 반 값에 팔아도 떼돈을 벌 수 있지 않습니까. 개발만 하면 ‘대박’이라는 생각에 이걸 사업 아이템으로 잡았던 겁니다.”

기술에는 웬만큼 자신이 있었다. 이미 견본 제품을 만들 정도의 기술은 학교 실험실에서 개발했고, 양산 기술만 남겨 놓은 상태였다. 학교 안의 실험기기를 사용할 수 있었고, 학교가 이전하면서 옛 부지 안에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한 터라 큰돈도 들지 않았다.

창업 1년 만에 양산에 성공했다. 제품을 갖고 국내 브라운관 모니터 제조업체를 찾아갔다. 반응이 쌀쌀했다. 제품의 품질이 아니라 제조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먼저 따졌던 것이다.

“성능 시험도 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벤처 제품을 어떻게 믿느냐는 투였죠.”

그저 연구만 해오던 아마추어 기업가로서 잘 만들면 팔릴 줄로만 생각했던 게 오산이었다고 박 사장은 회고했다.

다행히 세계 3위 브라운관 모니터 제조업체인 대만의 중화영관에 판로가 트였다.

“견본을 보냈는데 시험해보니 성능이 일본 제품 못지않다는 거였습니다. 그쪽은 우리가 갓 만든 벤처인 줄 모르고 시험을 했던 것 같아요.”

또 다른 고객도 생겼다. 일본의 경쟁업체였다. 자신들에게 제품 원료 물질을 대달라고 했다. 한국의 브라운관 업체를 놓고 출혈 경쟁을 하지 말고, 나노신소재가 만든 원료 물질을 자신들이 괜찮은 값에 사서 가공해 완제품으로 팔면 누이 놓고 매부 좋지 않느냐는 설명이었다. 알고 보니 국내 브라운관 회사들이 “한국에도 당신네 경쟁업체가 생겼다. 거기는 싸게 주겠다는데 당신들도 값을 내려 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일본 회사와 계약했다. 생산량을 늘려야 해 공장을 증설했다. 연구원과 생산 인력도 더 뽑았다. 다른 신제품도 개발하기 시작했다. 반도체 표면을 곱게 갈아주는 나노 물질, 유리에 덧씌우면 자외선과 열을 차단해주는 나노 물질(TRB페이스트) 등이었다. 제품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나노 물질을 골고루 뿌려주는, ‘나노 분산 기술’이란 큰 줄기에서 곁가지를 친 것이었다.

한창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있던 때 난관이 닥쳤다. 2002년 국내 경쟁업체가 생겨 제일 큰 고객이던 중화영관을 놓고 가격 경쟁이 벌어졌다. 공장 증설까지 했는데 판매량은 줄고 수익성도 급격히 나빠졌다. 임원은 급여의 50%, 직원은 15%를 깎고도 모자라 2003년에는 박 사장의 집을 잡혀 대출까지 받았다.

2003년은 마침 교수로서 안식년이기도 했다. 강의 부담이 없어진 박 사장은 미국으로 가 3M·듀폰 등의 연구 책임자를 만났다.

“어차피 국내에서 판매가 안 되니 아예 세계로 눈길을 돌려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기술은 자신 있었으니까요. 연락처가 나와 있는 고객서비스 센터부터 접촉했죠. 끈질기게 연구·기술 담당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요구해서는 제품과 기술을 설명했습니다.”

그게 먹혔다. 3M이 그때 유리 코팅 물질인 TRB페이스트의 고객이 됐다. 다른 고객사도 많이 확보했다. 그 덕에 지금도 전체 매출의 60%를 미국에서 올리고 있다.

2003년 가을 박 사장은 귀국해 한국수출입은행을 찾았다. 3M 등에 수출을 하기 위해 당장 필요한 원료 구매 대금 등을 빌리려는 것이었다. 심사를 맡았던 당시 대전지점 이현정 차장은 그때를 이렇게 말했다.

“몹시 뜨거운 전등을 켜놓고 TRB페이스트가 열을 차단하는 실험을 해 보여 주더군요. 얇은 막인데도 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게 정말 신기했습니다. 이건 되겠다 싶었죠.”

자금이 지원되고 본격적인 수출이 시작됐다. 터치스크린용 원료 나노 물질 등을 계속 개발해 제품도 다양화했다. 2003년 15억원이던 매출은 이듬해 51억원, 지난해엔 200억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52억원. 영업이익률이 25%를 넘는 알짜배기 장사다. 박 사장은 “1달러 원료로 150달러짜리 제품을 만들던, 예전의 전자파 차폐액과 비슷한 기술이라 이익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국내 대기업들도 이젠 나노신소재의 기술을 인정하고 있다. 현재는 은나노 물질을 이용해 아주 미세한 회로를 새기는 기술을 국내 굴지의 대기업과 공동 개발하고 있다. 터치스크린과 태양전지 등에 쓰일 기술이다.

박 사장은 “운이 좋아서인지 갖고 있는 원천기술을 응용한 제품들이 스마트폰이나 태양광 발전처럼 요즘 쭉쭉 뻗어나가는 사업에 활용되고 있다”며 “올해 매출은 지난해의 두 배인 405억원이 목표”라고 말했다.

청원=권혁주 기자



“밤새워 일하는 연구원들이 최고의 자산”

[박장우 사장 인터뷰]

“소재산업은 그야말로 분·초를 다투는 분야입니다. 한 발, 아니 반 발 앞선 기업이 승자가 되지요. 이렇게 피 말리는 경쟁에서 앞서가기 위해 시키지 않아도 밤을 새우는 연구원들이야말로 최고의 자산이 아닐까요.”

박장우(사진) 나노신소재 사장은 회사 경쟁력의 원천을 연구원들에게서 찾았다. 그들이 밤을 새우는 이유는 ‘주인의식’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의 주인의식, 사실은 박 사장이 심은 것이었다. 한 사람당 1% 안팎씩 회사 주식을 나눠 줘 ‘주인’으로 만들었다.

박 사장은 연구개발(R&D)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기술벤처의 미래는 R&D에 있다는,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신념에 따른 것이다. 적자를 냈던 2003년에도 매출의 13%를 R&D에 투입했다. 연구원들이 “이런 게 필요하다”고 구매 요청을 하면 두 말 없이 OK다. 다만 씻어서 다시 쓸 수 있는 약품 병을 그냥 버리는 등 낭비하는 걸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불호령을 내린다고 한다.

1년에 한 차례 성과 평가를 해 제품을 최초로 상용화시키고, 1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연구원에게는 포상금 1000만원을 주는 제도도 지난해 도입했다. 실제 지난해 1호 수상자가 나왔다.

박 사장은 다른 부서보다 연구원들과 회식을 자주 한다. R&D 조직과의 스킨십 강화다. 나노신소재의 한 관리직 간부는 “회사에 처음 들어온, 생산·관리 부서 직원들은 최고경영자(CEO)가 연구원만 편애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연구원들이 모두 CEO의 제자이고, 또 회사의 경쟁력이 R&D에서 나온다는 것을 안 뒤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고 덧붙였다.

나노신소재는 내년 코스닥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앞서 올여름 중 연구원들뿐 아니라 전 임직원에게 우리사주를 나눠 줄 계획이다. 주인의식을 전 직원에게로 확산시키는 매개체로 우리사주를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박 사장은 “직급에 관계없이 회사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한 임직원에게는 스톡 옵션을 주는 방안도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청원=권혁주 기자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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