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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인권법 시행령 제정 신중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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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그동안 각종 인권 신장에 발맞춰 형벌권의 개혁도 끊임없이 추진돼 왔다. 최근 두 가지 변혁 사안이 제기돼 우리 형벌권의 운용이 매우 중요한 순간에 처해 있다고 생각된다.

즉 첫째가 인권법의 시행이요, 둘째는 사형 폐지론의 제기다. 이 두 가지 모두가 국가 형벌권의 중대 변혁사항이라 할 수 있어 몇가지 소견을 제시한다.

먼저 인권법의 시행이다. 지난 5월 24일 공포된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시행령 제정과 조직.인원구성만 남아 있는 상황 아래에서 형사사법의 집행기관인 경찰.검찰.교정기관 등이 엄청난 영향을 받을 것이며, 특히 교정시설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인권법은 기존의 행형법 등과 현격히 다른 규정을 두어 많은 혼란이 예상되고 있다. 즉 인권위원들의 교정시설 불시 방문조사,진정권자의 광범위한 확대(수용자.가족.친지.제3자.인권단체 등), 진정 방법의 대폭 개방(서면진정,구두에 의한 면전진정 등), 교도관의 진정방해시 3년 이하의 징역 등을 규정하고 있고, 동시행령(안)에서는 수용자가 전화나 팩스로도 진정하게 했고, 교도소에서 그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는 자연히 다음과 같은 혼란과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첫째, 범법자의 인권보장 못지 않게 피해자의 인권과 교도관들의 업무집행권도 보장돼야 한다. 행형법과 그 집행을 감시.보완해야 할 인권법이 형평성을 유지하지 못해 기존의 교정질서가 그 기반부터 혼란을 일으킨다면 국가형벌권이 권위를 잃게 될 것이다.

둘째, 범법자들이 입소해 출소할 때까지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진정을 일삼을 때 진정의 양산이나 도미노 현상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셋째, 형벌권 집행의 주체는 누구인가. 누구를 위한 형벌권이며 교정권인가. 형사사법의 최종 보루요, 형벌집행의 현장인 교정시설에서 교정의 혼란과 무질서를 야기하는 변혁을 추진한다면 이는 마땅히 조정돼야 할 것이다.

다음은 사형 폐지론의 제기다.

존폐론의 여러 논거는 이를 생략하고 주요 사안에 대해서만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인권 측면에서 보자. 잔인무도하게 살인행위를 자행한 범죄인의 인권은 존중되고 비참하게 생명을 박탈당한 피해자나 가정의 인권은 보장되지 않아도 되는가. 자기 부모.처자.형제자매가 무자비하게 생명을 박탈당했는데 그 살인자에게 사형을 하지 말자고 주장할 수 있는가. 양심에 호소하며 묻고 싶다. 피해자의 비참한 피살 참상과 사형수의 애절한 사형 장면을 양쪽 똑같이 보고 폐지론을 주장해야 할 것이다. 누가 살인과 사형의 원인을 제공했는가.

둘째,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사형 존속에 관한 찬성률을 보자. 한국여론조사연구소(66.5%), 국가홍보처(67.5%), 한국형사정책연구소(54.3%) 등이 그것이다.

셋째, 유권해석 면에서 보자.대법원이 1963년 이후 4회나 사형의 합헌결정을 했고,헌법재판소의 사형제도 합헌평결(96), 국회의 사형폐지 부의안 부결(99) 등이 그것이다. 법무장관도 사형폐지는 이르다고 했고(지난 11월 11일 KBS 일요진단), 대한변협도 사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혔다(11월 22일).

넷째, 교정의 경제적 측면에서 보자.사형을 폐지해 그들을 종신형(가석방을 허용치 않는)으로 수용하면서까지 장기간 수용할 필요가 있는가.

이상 두가지 변혁 사안에 대한 신중론을 제기했다. 인권법 시행령의 제정은 행형법과 상충되지 않도록 신중히 조정돼야 하며, 사형 폐지론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허주욱 <한국교정학회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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