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강성현]조선족(朝鮮族)과 ‘한선족’(漢鮮族)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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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순이 지은 『우리에게 다가온 조선족은 누구인가』 등을 비롯하여 조선족을 소개하는 책 들이 꽤 여러 권 나와 있다. 이러한 책자들을 통해서나 또는 직 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우리는 나름대로 조선족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조선족을 한국에서는 ‘중국동포’(中国同胞)’라는 ‘품위있는’ 말로 바꿔 부른다. 중국사람들은 이들을 소수민족의 하나인 ‘씨엔주(鮮族)’라 칭한다. 그러나 대다수 한국인들은 ‘중국동포라’는 용어보다는 습관상 간단히 ‘조선족’으로 부른다. 이 ‘조선족’이라는 호칭에는 ‘한 핏줄’, ‘근면’, ‘가련’, ‘멸시’, ‘피해의식’ 그리고 ‘애증’ 등의 개념이 교차한다.

중국사회에서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가장 교육열이 높고 우수한 부류가 ‘씨엔주’라고 하는데는 이견이 없다. 그래도 ‘씨엔주’ 출신이 한족 중심의 주류 사회에 진입하기란 여전히 하늘의 별따기이다. 이들은 공산당에도 가입하며 충성도를 인정받기 위해 한족보다 더 많은 공을 들인다.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有钱能使鬼推磨)’는 중국 사회에서, 일부 조선족들은 물정 모르는 한국인을 상대로 잔인하리만치 ‘이익’을 추구한다.

조선족의 공과(功過)는 분명 두드러진다. 이들은 완벽한 이중언어를 구사하며 한국과 중국을 넘나든다. 명문 베이징대나 칭화대를 졸업한 한국의 유학생들도 이들의 유창한 중국어 수준을 따라잡기란 쉽지 않다.

중국으로 돈벌이에 나선 한국인들은 고추장, 된장을 즐기며 구수한 연변 사투리를 쓰는 조선족들과 금방 친해진다. “우리가 남이가!” 하며 호형호제한다. ‘겸손하고 예의바른’ 체하는 이들에게 쉽게 마음을 줘 버린다. 통역 겸 비서로 데리고 다니며 ‘조선족 아우들’과 깊숙이 사업 구상을 한다. 경험이 부족하여 조선족 명의로 ‘가게’를 꾸려 쪽박을 차기도 한다.

연변에서 사업을 벌였다는 60대 후반의 김 모사장은 술 몇 잔 들어가자, “조선족이라면 이가 갈린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형님 동생하며 동업을 하였다가 사기를 당한 전형적인 예이다.

항간에 떠도는 씁쓸한 얘기 한 토막을 소개한다. 낯선 중국 땅에서 ‘동포’인 조선족들에게 사기를 당하여 전 재산을 날리고 오도가도 못한 채 불법 체류자 신세로 전락한 사람들을 ‘신 조선족’이라 부른다. 이들 중 일부는 재기를 위해 몸부림을 치다가 중국 땅에 갓 진출한 신참 한국인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인다고 한다. 누군가가 이를 두고 이른 바 ‘동반자살’이라고 하였다. 중국 땅에서 이제 한국인끼리 속고 속이는 악순환이 재연(再燃)되고 있는 것이다. “한족(漢族)보다 조선족이 더 무서워”, “조선족보다 한국사람을 더 조심해”라는 말은 이제 한인사회에서 공공연히 유행어가 돼 버렸다.

일부 중국동포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한국인과 조선족 사이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간극(間隙)이 존재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한국에서 피해를 당한 조선족들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헐뜯는 지경에 까지 이른 것이다.

같은 핏줄로서 한 세기 전 독립을 위해 중국 땅에서 피를 뿌렸던 ‘조선족’의 존립 기반 자체를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더 이상 ‘감상적(感傷的) 시각’에서 ‘동포’라는 이름으로 조선족을 바라봐서도 안된다. 그렇다고 증오에 찬 눈으로 이들을 멀리해서도 도움이 안된다. 옥석을 가리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조선족 가운데 세태 흐름에 교활하리만치 민첩하고 영활(靈活)한 이들을 ‘한선족(漢鮮族)’이라 부르고 싶다. 여기에서 말하는 ‘한’(漢)이란 ‘중국 국적’이란 의미이다. ‘한선족’이란 곧 중국 소수 민족 가운데 하나인 ‘씨엔주’ 또는 ‘한국말을 잘하는 중국인’으로 풀이하면 적절할 듯하다.

중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신출내기’ 한국인에게 권고하고자 한다. 중국 동포를 ‘한선족’으로 이해하고 냉철한 두뇌로 접촉해야 피해도 덜 입고 ‘애증’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도 쉬울 것 같다. 쉬 뜨거우면 쉬 식는 법이다.

강성현 peofish58@naver.com
장쑤성 옌청 사범대학 초빙 교수, 『차이위안페이 평전』 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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