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 뜨거운 아동용 사이트 '위험수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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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 28일 주부 金모(35.서울 은평구 불광동)씨는 "디지몬 캐릭터를 보고싶다"고 조르는 아들(6)의 성화에 못이겨 무심코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깜짝 놀랐다.

어린이용 디지몬 사이트의 게시판이 '옷을 벗기고 ○○를 만졌다''리키와 나리가 막 섹스를 했다' 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글과 사진으로 도배돼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이 확 달아올라 얼른 컴퓨터를 꺼버린 金씨는 "어린 아이들이 이같은 외설물을 인터넷에서 몰래 돌려보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어린이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애니메이션 만화 '디지몬 어드벤처'와 '파워 디지몬'의 캐릭터를 소개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성인 사이트를 방불케 하는 외설.폭력물로 오염되고 있다.

특히 컴퓨터 실력이 뛰어난 초등학생들이 직접 운영하는 이들 사이트는 이용자들이 대부분 어린이들로 어른의 감시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 실태="리키:00에 혀를 넣어야지. 나리:낼른닐른~."

디지몬의 주인공인 '리키'와 '나리'를 등장시켜 디지몬 사이트에 올린 엽기적인 글이다.

국내 디지몬 관련 사이트는 줄잡아 60여개. 이중 캐릭터 상품 판매회사 등이 운영하는 10여개를 제외한 50여개에 외설물이 올라 있다.

이들 사이트는 디지몬을 좋아하는 초등학생들이 직접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사이트 토론방.게시판에는 대부분 디지몬에 나오는 ▶리키▶산해▶나리▶태일▶매튜▶소라▶정석 등 남녀 주인공들의 외설.폭력.변태 대화내용과 일본풍 만화 등 외설물들이 즐비하다.예컨대 '섹쉬 사건''변태디지몬 1화''열라(매우)야한 것'이란 제목을 클릭하면 성인 사이트에 들어온 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야후''네이버' 등 인터넷 검색프로그램에서 '디지몬'이란 단어만 치면 줄줄이 사이트가 소개돼 어린이들도 손쉽게 접속할 수 있다. 사이트당 하루평균 6백여명이 접속하는 점에 미뤄 매일 3만여명의 어린이들에게 노출돼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실제 지난 3월 개설된 '강호의 디지몬 어드벤처'의 경우 캐릭터 유머코너.일본풍 만화 등이 인기를 끌면서 지금까지 모두 1백만여명의 어린이들이 방문했을 정도다.

◇ 문제점=어린이들이 만든 사이트는 현행법 상 통제수단이 전혀 없다. 지난 1일 시행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는 청소년 유해 매체물 표시와 유해 사이트 차단 소프트웨어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어린이들이 제작한 사이트 자체를 '유해물'로 볼 수 없어 규제가 불가능하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 홍순철(36)유해정보팀장은 "익명의 어린이들이 마구 올리는 글의 내용을 검열.차단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 대책=인간발달복지연구소 이주희(李珠姬.36.여)연구원은 "어린이들이 정신적.신체적으로 성장하기 전에 성(性)관련 유해 정보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는 바람에 왜곡된 '성적표현 일탈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李연구원은 "성적 호기심을 갖기 시작하는 초등학생들에게 올바른 성교육을 하고, 자녀와 함께 인터넷을 이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보통신윤리위측은 ▶유해정보는 곧바로 위원회 홈페이지(http://www.icec.or.kr) 불건전정보센터에 신고하고▶사이트 운영자가 항상 글 내용 등을 체크해줄 것을 당부했다.

양영유.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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