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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세 여걸의 성공 비결“나는 나를 이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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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돌리자 라이스
안토니아 펠릭스 지음, 오영숙 외 옮김
일송북, 344쪽, 1만2000원, 2003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1·2
(마담 세크러터리)
매들린 올브라이트 지음, 백영미 옮김
황금가지, 각권 400여쪽, 각권 1만3000원, 2003년

살아있는 역사 1·2
힐러리 로댐 클린턴 지음, 김석희 옮김
웅진닷컴, 각권 380여쪽, 각권 1만2000원, 2003년

“아빠, 제가 백악관을 밖에서 구경해야 하는 건 피부색 때문이에요. 두고 보세요, 전 반드시 저 안으로 들어갈 거예요.” 조지 W 부시 대통령 집권 2기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콘돌리자 라이스가 10세 때 부모와 여행 중 백악관을 멀리서 지켜보며 한 말이다. 그런 라이스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부시 집권 2기의 대외 정책 방향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특히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의 방향이 초미의 관심사인 우리로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인간 콘돌리자 라이스에 대한 관심도 흥미 차원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커지게 됐다. 그래서 전기 작가 안토니아 펠릭스의 『콘돌리자 라이스』에 새삼 주목하게 된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앨라배마 주에서 태어난 라이스는 피아니스트를 꿈꿨다. 어머니가 지어 준 이름 콘돌리자도 이탈리아어 ‘콘 돌체자’(부드럽게 연주하라)에서 딴 것이다. 하지만 ‘카네기홀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피아노바에서 인생을 마칠 가능성이 큰’현실에 부딪힌 라이스는 15세에 조기 입학한 덴버 대학 시절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었다. 그리고 19세에 덴버 대학 우등 졸업, 26세에 박사학위 취득과 함께 스탠퍼드대 부교수 임용, 34세에 국가안보위 자문역, 38세에 스탠퍼드대 최연소 부총장, 46세에 첫 여성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 50세에 국무장관으로 지명되기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다.

범상치 않은 발걸음 뒤에는 범상치 않은 부모가 있었다. 라이스의 부모는 어린 라이스에게 음악·발레·외국어와 각종 스포츠를 가르친 것은 물론이고 못 말리는 독서광으로 키워냈다. 라이스는 학교 입학 후 필독서나 권장 도서 목록에 오른 책들을 모두 독파했다. “부모님은 저에게 모든 기회를 제공했어요. 그분들은 제가 무엇을 하든지 반드시 성취할 것이라 믿어줬지요.” 자식이 부모에게 보낼 수 있는 최상의 존경이 아닐 수 없다. 부모의 믿음과 배려야말로 자식의 자부심과 성취욕의 밑거름이다.

혹시 그런 자부심과 성취욕이 대외 정책에서 강경 기조를 고집하게 하지는 않을까? 라이스를 이른바 매파로 분류하기도 하지 않던가. 라이스에게 정계 입문의 계기를 제공한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회고다. “라이스는 수줍어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교만하거나 직관적이지도 않았다.” 1989년 몰타 미·소 정상회담에서 라이스를 만난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의 회고다. “그녀는 내가 아는 소련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이번엔 친구 코잇 블래커의 말이다. “그녀는 거의 기록을 하지 않아요. 머릿속에 정교하게 그려두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안보 보좌관으로서의 임무에 관한 라이스 자신의 말이다.

“기관차가 정시에 떠날 수 있도록 관리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이런 말에서 라이스의 스타일을 추측해보자. 그는 어떤 사안이든 그와 관련한 모든 자료와 정보를 치밀하게 챙긴다. 상황을 완벽에 가깝게 파악해야 직성이 풀린다. 직관이나 막연한 기대에 의지하지 않고 미리 정한 수순에 따라 상황을 주도해나가는 스타일이다. 그러면서도 한 번 정한 원칙이나 로드맵은 자신감을 갖고 강력하게 추진한다. 요컨대 라이스의 스타일을 강경이나 유화 어느 한쪽에서 찾는 것보다는, 하나의 사안에 관한 다양한 관점과 정보를 종합해서 일관된 관점으로 통합시키고 그에 따라 일관성 있게 실천하는 능력, 즉 통합적 복합성(integrative complexity)에서 찾는 편이 좋지 않을까. 대체로 이런 인물은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매우 싫어한다.

흥미롭게도 라이스가 국제정치 분야에 심취하게 만든 대학 시절 은사 조셉 코벨 교수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매들린 올브라이트의 아버지다. 올브라이트의 회고록 『마담 세크러터리, 매들린 올브라이트』에서 우리는 콘돌리자 라이스 못지않은 삶의 드라마를 만날 수 있다. 1937년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난 올브라이트는 나치의 탄압을 피해 두 살 때 조국을 떠났다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귀국했지만 체코가 공산화되자 11세 때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했다. 대학 시절 미국 굴지의 미디어 그룹 콕스 가문의 상속자 조셉 올브라이트를 만나 졸업 후 곧바로 결혼해 마흔다섯 살까지 주부로 살았다. 하지만 남편의 일방적인 이혼 통고를 받았고, 이후 조지타운대 교수, 민주당 외교전문위원, 상원의원 보좌관 등으로 활동하다가 클린턴 행정부 1기 내각에서 유엔대사를 거쳐 1997년 2기 내각에서 국무장관이 됐다.

그녀의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아무래도 한반도 관련 부분이다. 올브라이트는 북한의 핵 개발 문제와 미사일 수출 문제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던 임기 마지막 해 2000년 10월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했다. 대화와 협상을 통한 외교적 해결 방안을 일관되게 고수한 그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에 대해 다분히 비판적이다. “나는 우리가, 부시 행정부가 반드시 탐사하게 될 외교적 통로를 열어 놓았다고 생각했다. 정권 이양 기간에 장관 지명자 파월은 내게 새로운 팀은 대략 우리가 떠난 지점에서 시작할 거라고 장담했다. 그렇지만 그와 세계는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걸 곧 알게 되었다.”

유엔 대사 시절부터 올브라이트는 국제 사회에서 평화를 증진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된다는 확신을 지켜왔다. 국제 사회는 자연적 혹은 인위적 참사로 인해 위기에 처한 국가를 도와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최근 보도를 보면, 올브라이트의 아버지이자 라이스의 스승인 코벨 교수는 공산 체제를 피해 난민이 된 경력답게 반공이념과 반(!)전체주의에 투철하면서도 실용주의적 접근법을 선호했으며, 기본적으로 미국을 ‘세계를 수호하는 횃불’로 여겼다. 올브라이트와 라이스 혹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외 정책 기조가 다른 듯하지만, 국제 정치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위상, 정체성 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과연 크게 차이가 나는지 곱씹어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동구권 이민 가정의 딸 올브라이트와 인종차별이 심한 지역의 흑인 가정의 딸로 태어난 라이스에 비한다면, 1947년 시카고 교외 중산층 백인 가정에서 태어난 힐러리 클린턴 뉴욕 주 상원의원은 가족 배경으로 보면 출발부터 미국 사회 주류에 상대적으로 가깝다. 매들린 올브라이트의 웨슬리대 10년 후배이기도 한 힐러리 클린턴의 회고록 『살아있는 역사:힐러리 로댐 클린턴』은 미국 사회의 전반적인 가치 변화를 조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특기할 만하다.

힐러리 클린턴은 참전 군인 출신의 열렬한 공화당 지지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공화당을 지지했으나 60년대 말 공화당의 우경화와 진보 운동의 분위기 속에 대학 시절 민주당으로 돌아섰다. 올브라이트가 명문 여대를 다니면서 현모양처를 꿈꾸었던 것과는 달리 힐러리 세대는 미국에서 사회적인 성공을 목표 삼아 적극적으로 경력을 추구한 첫 여성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나 자신의 독자적인 견해와 관심사와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상징했다.” 독립성과 자주성을 강조했고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 “우리 집에 겁쟁이는 발붙일 수 없다. 엄마가 때려도 된다고 허락할 테니 나가서 맞서라”고 말했던 어머니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힐러리가 클린턴 전 대통령의 아내가 아니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위상의 인물로 성장할 수 있었을지 의구심을 품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잘 알려져 있듯이 그들의 관계는 일반적인 부부라기보다 정치적 동반자에 가까웠다.

이상 각자의 회고록과 전기를 통해 살펴 본 세 사람의 여성은 단순한 흥밋거리 이상의 다양하고 진지한 주제들을 되물어볼 수 있는 계기들이다. 직접적으로는 미국의 대외 정책이나 정치 환경, 나아가 미국 사회 전반을 들 수 있다. 하지만 보다 넓게는 미국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한다는 전제 위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관한 보편적인 성찰의 계기를 제공해준다. 특히 ‘지금 여기 우리에게’ 그 성찰이란 것은 딸이라는 이름으로 자라나고 있는 미래의 올브라이트, 미래의 라이스, 미래의 힐러리에 관한 성찰, 요컨대 우리의 ‘절반의 미래’에 대한 성찰이 아니겠는가.

표정훈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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