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이렇습니다] 성인지(性認知) 예산 늘린다는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1면

총액을 뭉뚱그려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성별로 수혜 비중과 경로를 분석한 것이다. 이처럼 예산이 집행될 때 여성과 남성에게 각각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미리 분석하고 평가한 것을 ‘성인지(性認知) 예산(Gender Sensitive Budget)’이라 한다.

기획재정부는 성인지 예산을 기금으로까지 확대하겠다고 지난주 발표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 등이 주도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데 따른 것이다. 개정안은 현재 일반회계와 특별회계에만 적용되는 성인지 예산을 정부 총지출의 30.5%에 이르는 기금에도 적용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올해 195개 예산사업에서 7조3000억원 규모로 편성된 성인지 예산이 내년엔 300여 개로 확대될 것으로 여성가족부는 전망한다. 개정안은 또 성평등 기대효과, 성별 수혜분석 등을 구체적으로 담도록 정했다.

여성계는 ‘갈 길이 멀다’는 반응이다. 이정희 의원은 “아직은 하나하나 축적해나가는 단계일 뿐”이라며 “성별 격차에 대한 총괄평가 없이 개별사업에 대한 평가만 있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처음 국회에 제출된 성인지 예산서는 그리 좋은 평가를 못 받았다. 3년 준비 끝에 나왔지만 성별로 단순수치만 나열하는 데 그쳤다는 비판을 들었다. 국회예산정책처 윤용중 경제정책분석팀장은 “성인지 예산에 대한 각 부처 담당 공무원들의 인식수준이 아직 낮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예가 보육예산을 100% 여성 수혜사업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보육은 여성이 할 일이고 국가·사회의 책무는 아니라는 잘못된 인식을 보여준 사례다.

재정부는 대의에는 공감하면서도 업무 부담 등을 이유로 적극 나서길 꺼리는 눈치다. 성인지 예산서를 작성하는 나라는 스웨덴·프랑스 등 10여 개국에 불과하다는 점도 거론한다.

허남덕 재정부 문화예산과장은 “예산을 편성할 때 성과주의, 고용·신성장동력·복지 등 여러 가치판단 기준이 있다”며 “양성평등도 이와 함께 균형 있게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인지 예산이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기대하는 건 곤란하다는 뜻이다.

재정부 출신의 김교식 여성가족부 차관은 “아직도 여성의 사회 진출에 어려움이 많은 만큼 예산 편성에서부터 양성평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경호 기자


한국의 성인지 예산

- 작성 부서 : 각 중앙부처(외국은 대부분 민간에서 작성)

- 형식 : 법정 서류인 예산안 첨부 서류로 국회 제출

- 도입 : 2010년 예산부터

- 대상 : 195개 예산사업(호주 15~160여 개, 프랑스 27~50여 개, 스웨덴 48개)

- 예산 규모 : 7조3000억원

자료 : 기획재정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