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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독일서 아프간 정파간 회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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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탈레반 정권의 사실상 붕괴로 권력 공백 상태에 빠진 아프가니스탄의 과도 거국정부 구성을 위한 정파간 회의가 당초 예정보다 하루 늦춰진 27일 독일 본에서 열린다. 그러나 대표단 구성 등을 둘러싸고 진통이 계속되고 있어 회의 개최가 하루이틀 더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유엔 중재로 열리는 이번 회의의 목표는 새 정부 출범시까지 잠정적으로 정부의 기능을 맡게 될 '15인 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한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그러나 각 정파간에 얽히고설킨 불신과 반목이 깊기 때문에 돌파구 마련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본 회의에 참가하는 4대 정파와 관련국들의 입장을 살펴본다.

◇ 북부동맹=이번 회의에서 가장 발언권이 세다. '포스트 탈레반' 논의에서 주도권를 잡겠다는 계산으로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카불에 입성했다. 그러나 내부 군벌들간에 벌써 권력암투가 시작됐을 정도로 다양한 세력의 집합체여서 이번 회의에서 정리된 입장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북부동맹 최대 정파 지도자로 아직 국제사회에서 아프가니스탄의 공식 대통령으로 인정받고 있는 부르하누딘 라바니 전 대통령이 수석대표로 누구를 파견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수도 카불의 치안을 맡고 있는 유누스 카누니 내무장관 대행이 유력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

라바니 전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과도기를 맡을 대통령이 뽑힌다면 대통령직을 포기할 것"이라고 24일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래프지와의 회견에서 밝혔다.

그러나 압둘라 외무장관 대행은 "이번 회담은 상징적인 것"이라고 밝혀 북부동맹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음을 내비쳤다.

◇ 로마그룹=이탈리아 로마에 망명한 자히르 샤 전 국왕 지지세력이다. 본-프랑크푸르트 그룹으로 불리는 독일내 아프간 세력도 이 그룹에 속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파슈툰족과 샤 전국왕 통치 시절 귀족 및 상류층이 이 그룹에 속해 북부동맹과 함께 양대세력을 이루고 있다.

왕정 복귀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과거 영향력이 어느 정도 복원되길 바란다. 북부동맹도 유엔이 샤 전국왕을 상징적 대통령으로 선택한다면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샤 전국왕은 특히 이번 회의에 손자인 무스타파 자히르와 함께 여성대표 두명을 파견키로 해 주목을 끌고 있다. 로마그룹 대표단에는 이밖에 북부동맹 주축세력인 우즈베크.타지크.하자라족 대표가 포함돼 있다.

◇ 키프로스그룹=아프가니스탄 망명정부 세력이다.

이란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이들이 지중해의 키프로스를 회합장소로 자주 이용, 이같은 이름이 붙었다. 핵심 인물은 몇년 전부터 이란에 망명 중인 파슈툰족 무자헤딘 지도자 굴부딘 헤크마트야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산되는 아편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그는 아편밀수를 통해 번 돈으로 막대한 양의 중화기를 사들였다. 그는 특히 1992~94년 카불시의 절반을 완전 파괴, 2만5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물로 악명이 높다.

탈레반은 물론 북부동맹과도 적대관계에 있으며, 오사마 빈 라덴만큼이나 미국을 싫어한다. 그러나 아프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정파인 만큼 이번 회의에 대표단을 보낸다.

◇ 페샤와르그룹=파키스탄이 후원하는 파슈툰족 정파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의 비호를 받고 있는 전 무자헤딘 지도자 아흐메드 가일라니가 핵심인물로 남부지역 파슈툰족의 군벌 지도자다.

지정학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파키스탄을 등에 업고 있어 무시하기 힘든 세력이다. 샤 전국왕의 인척이기도 한 그는 아프간에서 러시아군이 철수하자 샤 전국왕의 복귀를 위해 노력해 오는 등 로마그룹과 가깝다.

◇ 관련 주변국=이번 회의에 미국.영국.러시아.파키스탄이 대표단을 파견한다. 그러나 아프간 문제는 아프간인들의 손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해 회담에는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회담 장소를 제공한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아프간 제 정파의 의견이 존중돼야 하며 외국이 나설 문제가 아니다"고 입장을 밝혔다. 독일은 기술적인 문제만 지원할 뿐 특별한 중재역할을 수행하지 않을 방침이다.

본=유재식 특파원, 서울=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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