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군수 비리 악순환 3곳 … 중앙일보, 돈 선거형 구조 첫 현장 분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6.2지방선거 충남 청양군수 후보 A씨는 최근 선거구민과 악수하면서 “식사라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미안하다”며 현금 15만원을 손에 쥐어준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기초자치단체장인 군수들의 비리는 이같이 선거를 치르는 후보 시절부터 만연한 실정이다. 군수 비리 사건은 왜 이렇게 많고, 더구나 되풀이되는 걸까. 본지 탐사기획팀은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록적인 군수 비리’로 지목되는 경북 청도, 경남 창녕, 전북 임실군 3곳의 사례를 현장 분석해 해답을 찾기로 했다.


①경북 청도는 2007년 말 정한태 군수 당선자가 주민 1400명에게 6억7000만원을 뿌려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지방선거 사범으로 기록된 곳이다.

②경남 창녕은 골재채취업자와 군수들 간 결탁 비리 등으로 최근 4년간 군수가 두 번 바뀌고 세 번 선거를 치렀다.

③전북 임실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도입(1995년) 이후 15년간 임기를 채운 군수가 한 명도 없는 지역이다.

이번 사례 분석에는 범죄심리학 교수·선거관리위원회·수사경찰 간부·부정선거에 관여했던 사조직 책임자 등 7명이 참여했다.

청도 한국 최대 규모 선거사범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로 유명한 경상북도 청도에서 만난 Y씨(63). 마을 이장까지 지낸 그는 “나는 청도군수 재선거에서 당선된 정한태 후보자의 화양읍 사조직 책임자였다”며 “아직도 자연스레 돈이 오가는 게 지방선거”라고 입을 열었다. 그는 이 죗값으로 1년간 옥살이를 했다. Y씨와 함께 2007년 재선거 때 금품 살포에 나선 다른 읍·면의 조직책 24명이 구속됐고, 돈 받은 주민 1400명이 줄줄이 입건됐다. 돈 살포 유혹에 무릎 꿇는 후보자들, 덥석 봉투를 챙기는 유권자들. 지방선거에서 이런 고질병은 왜 되풀이되는 걸까.

◆“당선만 되면 남는 장사”=청도군 주민은 4만4000여 명으로 유권자는 약 3만8000명이다. 청도 선거관리위원회 서동화 사무과장의 가상 분석에 따르면 군수 후보로 지지도가 비슷한 3명이 나오고, 투표율을 70%로 가정할 때 1만 표면 당선 안정권이다. 여기서부터 표를 사고 싶은 ‘매표(買票) 심리학’이 발동한다. 지방선거에서 ‘돈선거형 비리의 악순환 구조’가 처음 밝혀진 셈이다.

이 사건을 지휘한 경북지방경찰청 박종화 경감은 “군 단위 지역은 유권자가 적어 후보자들이 돈으로 표심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많다”고 말했다. 예컨대 청도 같은 곳에서 군수 당선권인 1만 표를 얻기 위해 1인당 5만원씩 뿌리면 5억원이면 된다. 후보자들 중엔 이 정도의 금액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자산가들이 많다. 당시 온천호텔 사장이었던 정한태 후보가 회사에서 자금을 조성해 뿌린 돈도 6억7000만원이었다.

강원택 한국정당학회장(숭실대 정치학 교수)은 “과거 제한적으로 투표권을 부여해 유권자가 적었던 영국에서도 술 사먹이는 비리가 있었지만 1860년대에 강력한 부패처벌법이 만들어져 없어졌다”고 말했다.

부적격 후보자가 돈을 뿌려 당선될 수 있는 ‘선거공학적 구조’는 더 있다. 지방선거에선 표심 잡기를 ‘공중전화’식으로 본다. 동전을 다 쓰면 통화가 끊기는 공중전화처럼 자금이 떨어지면 더 이상 아무것도 못한다는 생각이다. 박종화 경감은 “후보들이 출발선에서는 모두 공명선거를 다짐한다”며 “하지만 막판으로 가면서 경쟁이 치열해져 조급증이 발동하고 돈을 투입한다”고 말했다.

◆조합장 선거가 물 흐려놔=지방 현장을 돌던 본지 탐사팀의 귀에 수없이 꽂힌 건 ‘조합선거가 지방선거 부정의 뿌리’라는 말이었다. “농협조합장 후보에게서 돈 받은 경험 때문에 사람들이 군수 선거 때도 ‘이번엔 안 주나’ 하고 은근히 바란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경북 봉화나 전남 신안의 조합장 선거에서 돈 살포가 문제됐다. 청도군 청도읍 고수리의 박성규(60)씨는 “기초단체장 선거는 한 집에 유권자가 여럿이라 어떤 후보 편일지 몰라 선뜻 금품을 주기 어렵다”며 “그러나 조합장 선거는 한 집에 1표이니 돈을 주기가 더 쉽다”고 말했다. 조합장 선거에서도 선거구의 역설이 작동한다. 조합원 수는 대략 1000~3000명이다. 1000명에게 10만원씩 주면 1억원이면 된다. 박종화 경감은 “조합장 선거 비리가 많지만 경찰 인력이 모자라 감시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경북 선관위의 임정렬 홍보과장도 “올해만 경북에서 80개의 조합장 선거가 있다”며 “일주일에 20개가 치러질 때도 있다”고 말했다.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현재 전국엔 농협·축협이 1181개 있다. 4년마다 있는 조합장 투표는 2005년에서야 선관위가 위탁받아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올해만 봐도 선거가 800개를 넘고, 연초에 몰려 감시하기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농협의 이중훈 문화홍보부 팀장은 “출마자들이 조합 직원이 아니어서 ‘내 돈 내가 쓴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선거법으로 처벌받아도 농사짓는 데 문제 없어 몇 년 지난 뒤 다시 출마한다”며 관리·감독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경기대 이수정(범죄심리) 교수는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많이 향상됐지만 선거 부정은 ‘행동 습성’ 같은 것이라 쉽게 바꾸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돈을 받는 시골 사람들에겐 몇만원이 크게 느껴질 수 있다”며 “특히 후보자들은 기성 정치인을 보고 돈선거에 죄의식이 없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창녕  4년간 군수 선거 세 번

창녕군수들의 ‘모래 무덤’ 낙동강 하구에 위치한 경남 창녕군의 한 골재채취장. 강에서 퍼올린 모래산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동시에 ‘군수들의 무덤’이다. 군수들이 골재채취량 허가권을 놓고 업자들과 유착한 뇌물 비리가 잦았다. 창녕군은 민선 4기 4년간 군수 선거를 세 번 치렀다. [공정식 프리랜서]

낙동강 하구에 위치한 경남 창녕군의 현창지구 골재채취장. 하루 평균 300여 대의 트럭(25.5t)이 분주하게 드나든다. 창녕에는 이런 골재채취장이 7곳 있다. 인근 의령군에 한 곳, 함안군에 두 곳이 있는 데 비하면 많다.

창녕군이 낙동강과 접한 곳은 60.4㎞, 경상남도 낙동강 유역의 절반이다. 연간 퍼내는 모래만 300만㎥, 240억원 규모다. 골재채취업은 창녕군 최대의 이권 사업이다. 이 골재채취장을 둘러싸고 2006년 민선 4기 출범 이후 현재까지 4년간 비리 등의 혐의로 군수가 2명 바뀌고 선거를 세 번이나 치렀다.

◆‘군수들의 무덤’=골재채취량은 매년 군청이 허가한다. 군청은 국토해양부로부터 배정받은 채취량을 관내 7개 사업장에 배분한다. 이 배분량에 따라 업자들의 사업 이익이 결정된다. 인허가는 군수가 독단적으로 행사하게 마련이다. 업자-군수 간 유착이 생기는 뿌리다. 유착은 돈 선거로 이어진다.

한 골재업자는 “우리가 아주 봉이다. 선거만 끝나면 당선된 군수의 측근이라는 자들이 찾아와 선거비 보전을 요구한다. 정치인을 가까이 하지 않다 보니 허가량 배정 때마다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창녕군청 골재경영담당 김동일 계장은 “예부터 이곳 모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불렸다. 그러나 골재업이 하도 골치 아프고 문제가 많아 인근 군들은 아예 손을 떼려 한다. 창녕은 사업 규모가 워낙 커 제도 개선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민선 4기 때 창녕 군수가 두 명이나 낙마한 것도 이 사업과 관련 있다. 채취장의 모래산이 ‘군수들의 무덤’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이유다. 김종규 전 군수(재임기간 2002년 6월∼2006년 7월)는 골재업자 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도중에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텃밭 정당인 한나라당 후보를 65표 차로 따돌리며 연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취임 한 달도 못 돼 군내 공설운동장 인조잔디 업자로부터 1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밝혀져 낙마했다.

다음 하종근 군수는 골재채취업자들로부터 4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2년간 군수 선거만 세 번. 세 번째 선거에서는 아예 골재업이 공약의 핵심선상에 올랐다. 선거 과정에서 시민단체 주도로 후보자들이 골재채취업 직영화를 놓고 정책토론회까지 벌였다. 선거의 주인공이 후보자도, 유권자도 아닌, 골재채취장의 모래무덤이 된 셈이다.



임실 15년간 임기 채운 군수 ‘0’

선거비가 필요한 후보자 시절부터 접근해 ‘보험’을 들어두는 것은 업자들만이 아니다. “정당 공천을 받고 나니 제일 먼저 찾아온 이들이 만년 계장들이었다. 4000만∼5000만원씩 싸들고 왔다. 그다음에는 건설업자들이 8000만∼1억원씩 든 돈가방을 들고 왔다. 거절했더니 상대 후보를 찾아가 선거운동을 하더라.” 전북 임실의 군수 선거에 나섰던 한 후보가 털어놓은 얘기다.

실제로 임실에서는 2003년 사무관 승진 인사 대상자 3명으로부터 9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당시 이철규 군수가 구속됐다. 올 초 1억2000만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군수직을 상실한 김진억 전 군수에 대해서도 최근 인사청탁 비리가 추가로 드러났다. 6급 승진 대상 공무원으로부터 2000만원을 받고 승진시켜준 뒤 사례비로 3000만원을 추가 수수한 혐의다. 임실군은 1995년 지방자치제 출범 이후 당선된 군수 세 명 모두가 구속돼 낙마한 진기록을 갖고 있다. 전국공무원노조 임실지부 김성남 위원장은 “이제는 그저 임기만 채워 달라는 게 군민들의 바람일 정도”라고 전했다.

단체장 비리의 피해자는 지역 주민들이다. 민선 4기 4년간 총 7회에 걸쳐 전국 198개 선거구에서 재·보궐 선거를 치렀다. 선거비용은 572억원으로 해당 지역이 부담한다.

손실은 선거비용만이 아니다. 잘못 뽑은 단체장이 저지른 예산 낭비, 비리는 지역 발전 저해로 이어진다. 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처장은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유권자다. 지방 선거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현장 사례 분석 참여자

청도 부정선거 사범 Y씨(63)
강원택 한국정당학회장(숭실대)
이수정 범죄심리학과 교수(경기대)
이광재 한국매니패스토실천본부 사무처장
박종화 경북지방경찰청 경감
임정렬 경북선관위 과장
서동화 청도선관위 사무과장

탐사 1·2팀= 김시래·진세근·이승녕·김준술·고성표·권근영 기자, 이정화 정보검색사 deep@joongang.co.kr
사진=공정식 프리랜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