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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피치] 조국애 실종된 대표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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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2-2 동점. 8회초. 결승전. 상대는 미국. 쿠바의 중심 타선이 용틀임을 시작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확연히 느껴졌다. 오레츠테스 킨델란.안토니오 파체코.오마 리냐레스 등 서른네살 동갑내기들로 이어지는 타선은 벌써 10년 이상 아마추어 야구 최강 쿠바를 지켜왔다.

예상대로였다.연속안타와 희생번트.희생플라이.2타점 적시타가 잇따라 터졌다. 쿠바는 순식간에 3점을 뽑아내 5-2로 앞섰고 야구월드컵에서 7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 시드니 올림픽 결승에서 미국에 져 상처났던 그들의 자존심을 만회해주는 값진 승리였다.

지난 18일 제34회 야구월드컵 정상에 오른 쿠바는 분명 다른 참가국에 비해 한 수 위였다. 궁금한 것은 이들이 10년 이상 국가대표로 뛰고 있는 부분이다.조각배를 타고 미국에 망명,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낀 올란도 에르난데스(뉴욕 양키스)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활약했던 아리엘 프리에토처럼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량을 지녔으면서도 월급 1백달러의 푼돈을 받으면서 국가대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들의 '직업관'은 어떤 것일까.

1994년 니카라과대회 때 당시 쿠바의 주축 투수였던 라사로 바예에게 왜 메이저리그에 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미국에 망명,부자가 되는 것은 그들의 꿈이다. 내 꿈은 다르다. 나는 조국을 위해 쿠바라는 이름을 걸고 야구를 하는 데 사명감을 느낀다. 적은 돈이지만 가족들과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이번 대만대회도 마찬가지였다. 킨델란.리냐레스 등은 메이저리그는 물론 일본 프로야구가 꾸준히 거액의 스카우트 제의를 한 베테랑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 제의를 한마디로 거절했다. 그들은 바예와 마찬가지로 "나는 조국 쿠바를 사랑하며 조국을 위해 뛰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대회에서 6위에 그친 한국대표팀을 놓고 말이 많다. 감독의 역량이 부족했고 선수들의 사명감도 떨어졌으며 훈련기간도 모자랐다는 지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모두 수긍이 가는 대목들이다. 상무의 김정택 감독은 프로선수들의 개성과 능력을 파악하지 못했다.

선수들 가운데는 마지못해 경기에 나서는 듯한 값싼 프로정신('생기는 게 있어야 뛰는 것이 진정한 프로정신'이라고 착각하는)을 가진 선수도 있었다. 또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훈련을 할 수 있는 날도 별로 없었다.

대만에서 느꼈던 가장 큰 실망은 누구 하나 단 한번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서…"라고 말을 꺼내는 선수나 관계자가 없었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 매스컴이 지켜보는 인터뷰에서 떳떳하게 "나라를 대표해 뛸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자랑스럽다"는 말을 듣고 싶었지만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만을 위해 뛴 선수들이나 오로지 체면 유지와 자리 보전에 급급해했던 대한야구협회 관계자들, 대표팀과는 관계없이 오로지 중남미 선수 파악을 위해 현지에 갔던 프로구단 관계자들 모두에게 낙담했다. 그들에게 승부욕은 있었는지 몰라도 조국애는 분명 모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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