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빠진 자리 종족들 '땅 따먹기'

중앙일보

입력 2001.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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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파키스탄의 유력 영자지 돈(Dawn)은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한 직후인 지난달 9일 "탈레반이 패퇴하면 각지의 군벌이 할거하면서 종족간 분쟁이 격화하는 내전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서 퇴각한 후 전개되고 있는 최근 상황은 불행히도 그 예측이 적중하고 있다는 우려를 고조시키고 있다.

로켓포와 중화기로 무장한 하자라족 병력 1천명은 15일 북부동맹이 장악한 카불을 향해 진격 중이다. 카불 시내에 있는 하자라족 보호가 명분이다.

북부동맹은 타지크족과 우즈벡족이 주축인 데 비해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하자라족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유일한 시아파 종족이다.

또 카불 동쪽의 군사 기지 잘랄라바드를 중심으로 한 낭가라르 주는 파슈툰족 군벌 유누스 칼리스에 의해 장악됐다.

이슬람 원리주의자인 칼리스는 북부동맹의 진입을 차단하고 있다. 카불 남쪽의 로가르 주는 이란에 망명 중인 파슈툰족 출신의 유력 군벌로 철저한 반미주의자인 헤크마티아르 전 총리를 지지하는 세력이 장악했다. 탈레반이 쫓겨난 틈을 타 북부동맹도 아니고 탈레반도 아닌 제3의 군벌 수중에 장악된 지역이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혼란의 근본적 원인은 아프가니스탄의 복잡한 종족 구성에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다종족 국가 체제로 유지돼 왔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힘이 미약하다.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최대 종족인 파슈툰 족은 ▶탈레반을 지지하는 극단적 원리주의자▶자히르 샤 전 국왕 중심의 반 탈레반 세력▶헤크마티아르를 비롯한 군벌 세력으로 나뉘어 칸다하르 주변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치열한 동족상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인구의 25% 가량으로 랍바니 전 대통령이 이끄는 타지크족과 이번 전쟁에서 최대 전과를 올린 라시드 도스툼 사령관 휘하의 우즈벡족은 북부동맹의 주도권을 놓고 예전의 적대관계로 되돌아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클레어 쇼트 영국 국제개발장관은 15일 "며칠 안에 과도정부가 수립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복잡한 내부 상황으로 인해 현실은 점점 기대와 멀어지고 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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