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정치권도 고강도 개혁 요구 … 검찰, 왜 이 지경까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수사 본질상 문제점은  게임 프로그램 개발·제조업체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2006년 검찰 수사를 받았다. 당시 검찰은 ‘바다이야기’와 관련된 업체를 일제 단속 중이었다. 검찰은 한 달여간의 조사 끝에 김씨에게 약식기소 처분을 내렸다. 김씨는 사행성 업체가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담당 검사에게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의 특징 등을 설명하는 자료를 냈다. 그러나 헛수고였다. 김씨는 "담당 검사가 ‘나는 그런 내용을 잘 모르니 웬만하면 그냥 벌금을 내고 끝내자’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억울한 생각에 정식 재판을 청구했고 검찰과 법원에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관련 자료를 제출했다. 3년간 재판을 벌였던 김씨는 “담당 검사가 게임과 관련된 제도와 법리를 잘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공부를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소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검찰이 담당하는 수사 범위가 금융·IT·무역 등으로 다양해지고 전문화되는 데 비해 일선 검사들의 전문지식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대 흐름 못 읽어 무죄만 양산=이런 경향은 경제 관련 범죄에서 두드러진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으로 기소된 사건의 무죄율은 1997년 1.1%에서 2008년에는 8.8%로 10년 새 8배나 늘었다. 법원의 기준이 까다로워진 탓도 있지만 검찰이 공부를 게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무죄율이 높아지다 보니 이에 둔감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검찰 출신의 이춘성 변호사는 “검사들이 대법원 판례 공부도 않고, 피의자의 무죄 취지 주장도 귀담아 듣지 않기 때문에 무죄가 양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형사 재판을 담당하는 한 판사는 “최근 들어 금융 범죄의 경우 공소장이 모호해서 공소 사실을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어떨 때는 검사가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 대충 기소해놓고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자는 식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덧붙였다.

공안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전교조 소속 교사들의 시국선언에 대해 인천·부산 지법에서는 유죄가, 대전·전주지법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공안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런 경우 법원만 탓할 게 아니라 같은 내용으로 판결이 엇갈린 이유를 분석해서 이를 공론화하고 다음 재판을 위한 대비책도 세웠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공안 검사들의 실력 부족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한 공안담당 검사는 “일부에선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공안 수사 기능이 크게 약화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공안 수사 방법에 대한 전수와 학습이 부족한 점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줄어들고 공판 능력도 저하=최근 구욱서 서울고법원장은 검사의 공판 준비 부족과 무능력을 질타했다. 구 고법원장은 “검사는 재판에서의 유죄 입증 책임이 있는데 그 역할을 잘 하지 못한다”면서 “내가 형사 항소부에 있을 때 공판 검사에게 가서 공판 좀 제대로 해달라고 사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이유로 공판이 아닌 기록으로만 재판을 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검찰이 비판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검찰 내 전문가 그룹이 줄어들고 있어서다. 서울의 한 부장검사는 “지난 10년간 검찰에 균등한 기회를 준다는 취지로 순환 보직화하다 보니 검찰 내에 전문성이 바닥난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과거에는 특수통·공안통 등의 그룹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그런 명맥이 사실상 끊기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대검의 한 간부도 “정치인 뇌물 사건 등 심증이 확실한 사건에서 무죄가 나는 것은 특수 수사 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라고 자평했다.

전진배·최선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