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국제 유가는 내렸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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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金모(37)씨는 12일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면서 짜증이 났다. 정유사가 지난 9일 경유 공장도 값을 ℓ당 20원 내렸지만 주유소 가격은 요지부동인 데다 최근 국제유가가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도 휘발유 등의 값은 찔끔 내리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金씨는 "미국 테러사태 직후 기다렸다는 듯이 기름값을 올린 정유업계가 테러사건 이후 경기침체에 따른 국제 유가 폭락은 애써 모른 척한 것 같다"고 말했다.

◇ 국제유가 내려도 공장도가는 소폭 인하=정유사들은 지난 9월 미국 테러사태가 나자 즉각 기름값을 올렸다.

S-Oil 등은 테러 직후인 18일부터 경유와 등유의 공장도 가격을 각각 ℓ당 25원과 10원 인상했다.

테러 이후 국제유가는 오히려 경기침체 때문에 계속 떨어졌지만 정유사들은 10월 중순이 돼서야 경유 가격을 ℓ당 15원 정도 내리는 등 석유류 값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국제유가는 11월 초까지도 하락세를 거듭, 두바이유의 경우 1999년 7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배럴당 17달러선까지 내렸으나 휘발유값은 10월 말과 11월 초 두차례에 걸쳐 ℓ당 모두 30원 내리는 데 그쳤다.

정유사들은 이에 대해 "휘발유 가격 가운데 ℓ당 8백60원이 세금이어서 공장도가격이 3백50원에서 10% 이상 내렸어도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인하분이 매우 작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 공장도값 인하 외면하는 주유소=정유사가 공장도값을 내려도 주유소들이 이를 반영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SK.LG 등 정유사들은 9월 5일 이후 지난 9일까지 휘발유 공장도 가격을 ℓ당 1천1백70원으로 49원 낮췄으나 상당수 주유소들은 소비자가격을 20원 정도 내리는 데 그쳤다.

주유소 가격비교 사이트인 오마이오일(http://www.ohmyoil.com)에 따르면 12일 현재 가장 많은 주유소가 책정하는 가격(최빈값)은 ℓ당 1천2백94원이다. 9월 초 공장도가격이 내리기 이전 주유소들의 최빈값이 1천3백14원이었으므로 대부분의 주유소들은 20원만 내린 셈이다.

이에 대해 정유사들은 "주유소들이 9월부터 여러 상표의 석유류 제품을 판매할(복수 폴 제도) 수 있게 된 이후 정유사들이 주유소 판매가격을 강제할 힘이 없어지고,주유소들은 공장도값 인하와 상관 없이 마음대로 값을 정해 높은 마진을 올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주유소 사장은 "모임에서 주로 의견이 모아지고 전화상으로 가격이 통보된다. 따르지 않을 경우 가짜 휘발유 판매 주유소로 신고하는 등 영업에 방해를 가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유사들은 국제유가를 투명하게 반영하고 지방자치단체들은 주유소들의 가격담합 여부를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며 "소비자 입장에선 기름값이 주유소 위치.경쟁업체 유무.서비스 내용.취급 유종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므로 이를 꼼꼼히 따져보고 기름을 넣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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