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민주당의 '위기가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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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민주당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당총재직 사퇴철회를 요청했다. 8일 당무회의에선 철회 요청을 당의 결의로 채택했고, 9일 관련당직자들이 청와대에 가 거듭 호소했다.

당무회의에선 "총재직 사퇴가 철회되지 않으면 당을 나가겠다"는 발언이 나왔고, "당무위원 전원이 사퇴서를 내 총재사퇴를 백지화하면 어떤가"라는 제안도 있었다. 金대통령의 총재직 사퇴는 민주당 창당 이래 가장 큰 충격같다.

*** DJ 없이 치를 지자체 선거

사실 민주당에서 金대통령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당무회의 발언을 빌리자면 "민주당의 아버지"다. 그만큼 金대통령 없는 민주당은 상상이 안된다.

당의 중추인 국회의원들만 해도 중부권출신 일부를 제외하고는 金대통령 덕분에 당선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민주당 의원이나 지구당위원장들이니 내년 6월의 지방선거를 金대통령 없이 어떻게 치르나 하는 걱정도 들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생각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민주당은 金대통령의 총재사퇴를 계기로 자력으로 설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기 때문이다. 사당(私黨)이미지를 벗어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민주당으로선 'DJ 대 반(反)DJ 구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기를 맞았다.이 DJ 대 반DJ 구도는 호남과 일부 수도권 출신 국회의원들에게는 재선을 보장해주는 안전판이고 바람막이였지만 민주당이 소수정권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도록 한 족쇄이기도 했다.

이같은 구도가 고착화되면서 민주당은 영남으로의 기반확대는 고사하고 반DJ층의 결집으로 수도권에서까지 밀리는 현상을 보였다. 단적인 예가 10.25 재.보선이다.

때문에 이같은 구도로 가서는 내년 12월의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이는 그동안의 숱한 여론조사 결과가 입증하고 있다. 민주당이 이같은 DJ 대 반DJ 구도를 허물고 새로운 정치구도를 만들어 가는 데 성공하면 자신들이 하기에 따라서는 재집권을 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왜 갖지 않는지 모를 일이다.

민주당 입장에서 상황이 개선된 부분은 또 있다. '대통령=총재'라는 집권당의 도식에서 벗어나면서 민주당은 몸이 훨씬 가벼워졌다.

그동안 청와대 눈치를 보고, 金대통령의 심기를 살피는 데 들였던 노력을 이제부터는 민심을 살피고 정책을 다듬는 데 써볼 만하다. 침묵해야 했던 민주당 의원들은 실정(失政)을 따끔하게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해 볼 기회가 생겼다. 이 역시 잘하면 지지도 상승으로 연결될 것이다.

우리의 정당문화는 여야를 막론하고 총재가 절대적 권한을 갖는 권위주의적 운영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기회에 다수가 참여하고 민주적으로 당을 운영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해 볼 만하다. 내친 김에 정치개혁의 여러 과제들을 도전적으로 실천해보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민주당은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전망이다. 당 총재인 대통령의 지원이 없어지면 제2당의 처지인 민주당은 원내에서 사사건건 한나라당에 휘둘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내부에선 대권주자들끼리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시끄러울 것 또한 분명하다.

*** 失政도 따끔하게 비판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이 사퇴 번복을 간청하고 DJ의 영향력에 의지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자해(自害)행위일 뿐이다. 그런다고 일이 되돌려질 수도 없고,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민주당에 보탬이 되지도 않는다.

자꾸 매달리면 민주당이 희화화(戱畵化)되거나 金대통령의 총재직 사퇴가 국면호도를 위한 거짓이라는 '위장사퇴' 논쟁이 나올 뿐이다. 오히려 민주당은 있을지 모르는 비선과 막후(幕後)들,金대통령을 팔아 당 운영을 좌지우지하려는 시도들을 단호히 뿌리쳐야 한다.

홀로 서는 기회는 쉽게 오지 않고, 한번 가버리면 또 오기도 어렵다.

김교준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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