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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병합 국제법상으로도 무효”…일, 100년 만의 양심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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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와다 하루키(앞줄 왼쪽에서 둘째) 등 일본 측 지식인들이 10일 도쿄의 일본교육회관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한·일 양국 지식인들이 100년 전 한·일 병합을 원천 무효라고 선언한 것은 양국 관계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일본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병합 조약의 법적 정당성을 처음으로 명백히 부정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조차 ‘유효 부당론’의 입장이었다. 도덕적으로는 부당하지만 국제법적상 유효하다는 인식이었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번 공동 성명의 경우 한·일 병합이 ‘법적 무효’에 해당한다는 데 양국 지식인들이 동의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한·일 지식인들은 성명서에서 “한국 병합은 대한제국의 황제로부터 민중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격렬한 항의를 군대의 힘으로 짓누르고 실현시킨 제국주의 행위이며 불의부정(不義不正)한 행위였다”고 주장했다. 성명서는 이어 “조약의 전문(前文)도 거짓이고 본문도 거짓이다. 조약 체결의 절차와 형식에도 중대한 결점과 결함이 보이고 있다. 한국 병합에 이른 과정이 불의부당하듯이 한국병합조약도 불의부당하다”고 선언했다.

일본 측 참가자인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는 “일본 정부의 왜곡된 역사인식이 바로잡히지 않은 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며 “이제는 일본 측의 왜곡된 해석을 유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와다 교수는 “7월까지 한·일 두 나라에서 각각 500명씩, 지식인 1000명의 서명을 받아 강제병합에 대한 해석을 바꿔달라는 요청을 정식으로 정부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성명은 법적 강제성이 없어 형식적으론 상징적 차원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병합에 대한 일본의 입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역사 직시를 강조해온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가 한·일 우호 분위기를 살려 ‘하토야마 담화’를 발표할 공산이 있기 때문이다.

글=김동호 특파원, 서울=배영대 기자
사진=박소영 특파원



‘한·일 강제병합 100년’ 한·일 지식인 공동 성명 주요 서명자 명단

◆일본= 가스야 겐이치 히토쓰바시대 교수, 강상중 도쿄대 교수, 고모리 요이치 도쿄대 교수, 사카모토 요시카즈 도쿄대 명예교수, 사사가와 노리카쓰 메이지대 교수, 시미즈 스미코 전 참의원 의원, 다카하시 소시 쓰쿠다주쿠대 교수, 다와라 요시후미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워크 21 사무국장, 나카즈카 아키라 나라여자대 명예교수, 나카무라 마라노리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 미즈노 나오키 교토대 명예교수, 미야지마 히로시 성균관대 교수, 아라이 신이치 이바라기대 명예교수, 야마다 쇼지 릿쿄대 명예교수, 야마무로 히데오 전 NHK 해설위원장, 오에 겐자부로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카모토 아쓰시 잡지 ‘세카이’ 편집장, 오다가와 고 전 아시아신문 편집위원,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우쓰미 아이코 와세다대 객원교수 등.

◆한국=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고은 시인, 김병익 문학평론가, 김영호 유한대 총장, 김용덕 광주과학기술원 석좌교수,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신용하 이화여대 석좌교수,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이문열 소설가, 이장희 외국어대 교수,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정재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조광 고려대 교수, 차하순 서강대 명예교수, 최원식 인하대 교수,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황석영 소설가 등.



한·일 지식인 공동 성명 요지

그간 두 나라의 역사학자들은 일본에 의한 ‘한국병합’이 일본 정부의 장기적인 침략정책, 일본군의 거듭된 점령행위, 명성왕후 살해와 정부 요인에 대한 협박, 그리고 이에 대한 한국인들의 항거를 짓누르면서 실현시킨 결과란 것을 명백히 밝혔다.

근대 일본국가는 1875년 강화도에 군함을 보내 포대를 공격, 점령하는 군사작전을 벌였다. 일본은 국왕에게 공포감을 주고자 왕비 민씨를 살해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천황의 특사로 서울에 와서 일본군의 힘을 배경으로 위협과 회유를 번갈아 1905년 11월 18일에 외교권을 박탈하는 ‘제2차 한·일협약’을 체결시켰다. 일본의 침략에 대해 의병운동이 크게 일어났지만 일본은 군대·헌병·경찰의 힘으로 탄압하다가 1910년에 ‘한국병합’을 단행하게 됐던 것이다. 이상과 같이 ‘한국병합’은 대한제국의 황제로부터 민중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격렬한 항의를 군대의 힘으로 짓누르고 실현시킨, 문자 그대로 제국주의 행위이며, 불의부정(不義不正)한 행위였다.

‘한국병합’에 이른 과정이 불의부당하듯이 ‘한국병합조약’도 원래 불의부당한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당초부터 원천 무효였다고 하는 한국 측의 해석이 공통된 견해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한국병합’ 100년을 맞아 우리는 이러한 공통의 역사인식을 가진다. 이 공통의 역사인식에 입각해 한국과 일본 사이에 놓여 있는, 역사에서 유래하는 많은 문제들을 바루어 공동의 노력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화해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 한층 더 자각적으로 진행돼야 할 것이다.

죄는 용서를 빌지 않으면 안 되고 용서는 베풀어져야 한다. 고통은 치유돼야 하고 손해는 갚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은 이 취지를 한국·일본 양국의 정부와 국민에게 널리 알리고, 이를 엄숙히 받아들여주기를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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