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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교양-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저는 셰익스피어와 괴테, 그리고 클래식 작품을 믿사오니, 이것들은 하늘과 땅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저는 빈센트 반 고흐가 신의 부름을 받은 화가임도 믿습니다. 자살을 기도한 이 외로운 작가는 신의 오른쪽에 앉아 계시며 어설픈 딜레탕트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저는 문화의 힘을 믿사오며, 예술의 거룩한 성전(聖殿)과 인문주의의 영원한 가치를 믿사옵니다. 아멘"(5백71쪽)

『교양-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원제 Bildung-Alles,Was Man Wissen Muss)의 저자가 '교양의 신앙고백문'이라 이름붙인 재기 넘치는 글은 인상적이다.

그건 두겹의 의미다. 우선 인문주의의 가치에 대한 그의 맹독성 신념은 요즘 디지털 시대와 정면으로 부닥친다. 시대착오적 확신이 신앙의 차원이라는 점이 놀랍도록 인상적이지만 이 책은 뜻밖에도 상업적 성공까지 거뒀다. 독일에서 2년째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깊은 인상으로 연결된다.

이쯤에서 독자들은 의문을 가질 법하다."서양문화사 2천5백여년을 교양이라는 이름아래 7백여쪽 단행본에 담아내는 작업이 매력적이라구? 혹시 그저그런 백과사전적 정보가 아닐까? "

다시 밝히지만 그건 전혀 잘못된 지레짐작일 뿐이다.'인문학의 죽음'이란 소문대로 황폐화된 지식문화의 시대를 정면돌파해낸 기념비적 저술이 이책이다. 본래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저술했다는 이 책이지만 이걸 조금도 무겁지 않게 풀어낸 고수(高手)다운 솜씨는 혀를 내두를 만하다.

이런 작품의 탄생이 우연일 순 없다. 별난 제목을 단 서장(序章) '읽지 않고 건너뛰어도 무방한 학교교육 제도 보고서'를 보자. 성적관리의 거대한 시스템으로 변한 학교는 배우려는 이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고 있고, 그 결과 '불구의 죽은 지식'만이 거래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런 구조에 대한 어퍼컷인 저자의 의도란 교양과 지식이 '사람들의 고동치는 삶' 속에 스며드는 제3의 작업을 말한다.

"교양지식에 대한 생동감 넘치는 관계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상파괴부터 해야 한다. 문화와 예술에 대한 우리의 존경은 이해 할 수 없는 우상에 대한 막연한 숭배가 돼서는 곤란하다. 우상숭배는 이 책에서 가차없이 파괴됐다. 교양지식의 공식적인 철갑 옷은 내동댕이쳐졌으며, 그 속에서 구출해낸 본래의 교양지식들은 쉬운 언어로 마사지돼 친근하게 다가올 것이다."(15쪽)

저자 슈바니츠의 우상파괴는 구체적으로 이런 식이다. 제1부 지식에서는 유럽사의 흐름을 훑는다. 분량은 2백50쪽 정도. 단 기왕의 통사(通史)식의 연대기적 서술과 달리 경쾌한 발걸음을 내딛는 핵심정리의 방식 말이다.

이를 테면 제2차세계대전 직전 독일의 히틀러의 등장은 이렇게 묘사된다."턱시도 예복을 입고 국가를 짊어진 불량배 패거리".

즉 탄력적 표현에 담아 한묶음으로 승부해내는 것이다. 이런 솜씨는 유럽사에 이어 문학.연극.음악.철학.과학 등의 영역을 각기 40쪽 내외의 분량에서 산뜻하게 처리하는 데서도 엿보인다.

이를 테면 연극사는 버나드 쇼.유진 이오네스코 등 7명 사이의 긴장감이 넘치는 토크 쇼로 처리된다. 이어지는 미술사는 미술관의 가이드를 따라 듣는 방식이다.

이런 시도 때문에 이 책의 작업이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류(類)의 '단순 다이제스트'와는 크게 구분된다. 얼핏 손끝의 감각에 의존한 것은 아닌가 싶겠지만, 이를 문화사적 맥짚기로 주물럭거린 대목은 과연 명의(名醫)가 따로없다 싶다.

하지만 이 책의 해설을 쓴 논객(論客)유시민의 말대로, 제2부가 재미로 치면 더 짭짤하다. 슈바니츠 만의 '교양론' 전개 대목이다.

문화영역의 기본정보에 대한 통달을 전제로 이것이 유연하게 훈련된 정신상태인 교양이란 결코 잡학정보나 박학(博學)의 허풍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연하게도 '교양인의 신앙 공동체'에서 시시한 프로야구 기록을 뜨르르 꿰는 것과도 구분된다.

교양끼리의 대화란 외려 축구의 공 패스놀이나 체스게임과 닮은꼴이어서 몰고갈 공과 움직일 말(馬), 즉 기본지식이 있어야 하고 게임의 금기와 규칙을 적절하게 알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사소통의 가장 중요한 수단인 언어와 문자의 중요성에 반복되는 저자의 강조, 교양인의 최고목표인 성찰적 지식에 대한 환기(喚起)는 저자가 이 시대 '희귀종의 인문주의자'임을 확인시켜 준다.

고학력자가 많아진 시대, 그러나 고전적인 교양은 커녕 '전문가 바보'를 양상하는 이 시대에 "이 책을 보지 않으면 사람도 아니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기는 『교양-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의 성공은 분명 역설이다. 이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까? 시대가 부박해질수록 이런 텍스트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적지않다는 증거물일까, 아니면 아날로그 시대의 마지막 불꽃일까 □

한국 독서시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까하는 대목이 궁금한 이유도 이 책이 갖는 이런 상징성 때문이다. 시야가 유럽지성사에 철저하게 국한된 이런 책의 한국형 버전에 대한 기대도 이 책을 훑어본 이 누구라도 가질 법하다.

한편 슈바니츠는 1940년생. 유년기에는 학교는 다닌 적이 없었지만 뒤늦게 뮌스터.필라델피아대 등에서 문사철(文史哲)을 두루 공부했다. 붕어빵 지식정보가 거의 없는 것도 이런 늦깎이들이 품게 마련인 원력(願力)이 아닐까 하는 판단을 갖게 한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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