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유학지, 필리핀이 뜨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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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외고 입시안이 발표되면서 조기유학 트렌드도 크게 변하고 있다. 1년 이상의 유학보다 귀국 후 국내 교육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 9개월 이하의 유학에 대한 학부모의 관심이 높다. 단순 어학연수를 목표로 하는 미국·캐나다 등지의 북미지역보다 영어·수학을 포함한 주요 과목을 집중적으로 몰입학습하는 필리핀 유학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북미권보다 상대적으로 유학비용 저렴

조기유학을 고려하는 학부모는 최근 북미권보다 필리핀과 같은 근거리 유학을 선호하는 추세다. 주부 유리(37·경남 김해)씨는 지난해 아들 김재훈(경남 화정초 6)군을 필리핀으로 유학보냈다. 귀국 후 국내 교육환경에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유학비용도 매력이었다. 유씨는 “미국이나 유럽은 우리나라와 교육환경이 너무 달라 한번 그 시스템을 경험한 아이들은 돌아오기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아직 품안의 교육이 필요한 시기에 1년 이상 부모와 떨어져있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이가 머물 곳을 직접 살펴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래서 유씨는 김군이 필리핀으로 떠날 때 함께 동행해 직접 현지 시설을 살펴봤다. 안전한 지역에 위치한 시설에서 보안 시스템을 꼼꼼히 확인하고, 아이와 한 방에서 잠자리에 드는 교사까지 만나보고 나서야 불안한 마음이 가셨다. 엄마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김군은 유학기간 동안 성적이 부쩍 향상됐다. 지난해 3월초 25점이었던 슬렙(SLEP) 점수가 귀국 직전엔 53점까지 올랐다. 영어로 자기소개서나 에세이를 무리없이 쓰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

입시전문가 신동엽씨는 “교과면접이나 영어공인성적 기재가 금지되는 현 입시제도 하에서는 아이가 자신의 영어능력을 자기소개서나 추천서 등 다른 형태로 증명해야 한다”며 “자연스러운 말하기나 에세이 작성 능력이 국내입시에서 큰 변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지 유학시스템이 잘 맞는지 따져봐야

영어권 국가에서 현지 학습을 하면서 귀국 후 필요한 수학 등의 주요 과목까지 보충해주는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필리핀유학 전문업체 클래스온 김주원 대표는 “예전엔 해외에서 영어의 기초를 잡고 귀국 후 입시 준비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며 “요즘엔 일반고에도 영어·수학 심화 교과가 신설됨에 따라 영어 심화교과에 대비한 수업은 물론 수학 진도까지 심도있게 진행하는 유학 프로그램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인기”라고 말했다.

최승원(서울 염창중 3)양은 3년 전 필리핀으로 9개월간 유학을 다녀온 뒤에도 수학 실력이 하나도 뒤처지지 않은 것이 가장 좋은 점이었다고 회상했다. “2~3년씩 해외유학을 다녀온 친구들이 귀국해서는 몇 달씩 수학공부에만 매달리는 걸 많이 봤어요. 하지만 필리핀에서는 매일 1시간씩 한국과 동일하게 수학 수업을 해줘 큰 도움이 됐어요.” 영어와 수학에 대한 기초를 잡고나자 국내에 귀국한 뒤 내신 시험기간 동안 다른 과목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 때문에 전 과목 성적이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최양의 어머니 이미경(42·서울시 양천구)씨는 “유학을 떠나기 전 아이의 슬렙점수는 30점 후반이었고, 영어 성적도 중위권 정도였다”며 “학원만 보내서는 상위권 학생들과의 실력 차이가 줄어들지 않을 것 같아 조기유학을 결정했는데 수학 기초까지 잡아 정말 잘 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변화하는 입시제도에 맞춰 조기유학을 결정하는 학부모의 인식도 함께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중학생 자녀를 조기유학 보낼 때는 특목고 등 상위권 학교 진학을 목표로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국내에서 수시로 변하는 입시제도와 자녀가 머물 곳의 유학시스템이 얼마나 잘 맞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영어의 학습 난이도가 높아지는 국내 입시제도에 맞게 에세이 작성과 집단 토론 수업이 잘 이뤄지는지 여부를 꼭 살펴보라”며 “국내 복귀 후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수학과 같은 국내 교과목에 대한 수업도 심도 있게 진행되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진설명]필리핀 단기유학은 집중몰입식 수업방식으로 귀국 이후 학생들의 적응이 빠른 것이 강점이다. 필리핀 현지에서 조별 수업에 참가하고 있는 학생들.

< 이지은 기자 ichthys@joognang.co.kr / 사진=황정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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