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전략적 접근 요구되는 ‘천안함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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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중국은 김 위원장에게 최고의 의전을 제공했고, 관례대로 당내 서열 9위까지의 인사를 모두 만나게 해주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에서 북·중 관계의 새로운 준칙에 합의했다. 고위층 교류의 유지, 전략적 소통의 강화, 경제무역협력의 심화 등이다.

이 중에서도 경제협력을 강화한 점이 눈에 띈다. 북한도 이번 방문의 목표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이 동북 지역의 주요 항구도시인 다롄(大連)과 톈진(天津)을 방문한 것도 이 도시를 ‘역할 모델’로 삼아 나진-선봉뿐 아니라 신의주 개발 등을 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북·중 경협 방식을 바꾸기 시작한 점이다. 즉 과거와 같은 단기적 원조에서 벗어나 사업 연계와 사회 인프라 구축 등 중장기적 발전계획을 논의했다. 김 위원장이 직접 해외자본 유치를 환영한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6자회담의 동력을 살리고자 한 것도 이번 회담의 핵심이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입장에는 변함이 없으며, “관련 당사국들과 함께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유리한 조건이 조성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표면적으로는 진전된 내용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양국이 물밑에서 이미 조율을 거쳤고, 무엇보다 6자회담에 대한 중국의 의지가 강하다는 점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한·미 양국이 천안함 사건을 6자회담과 연계하고 있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카드를 제시할 수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마지막으로 후계자 문제다. 지난해 4월 북한이 광명성 2호를 발사하고 이어 핵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북한 문제의 핵심 의제인 후계체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다. 그러나 7월부터 북한 문제를 둘러싼 내부 토론을 거쳐 북한 문제와 북핵 문제를 분리해 접근했고, 이 과정에서 후계 문제도 대체적으로 정리됐다. 이것이 이후 북·중 관계를 회복하는 모멘텀으로 작용했다. 김 위원장이 “시간의 흐름과 세대교체로 인해 앞으로 변화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례적 발언은 후계 문제에 대한 북한의 관심을 환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우리에게 새로운 전략을 요구하고 있다. 동북아 질서에 대한 보다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전략적 지도를 그리는 것이 장기과제라면, 천안함 사건과 6자회담 사이의 관계를 푸는 것은 현안이다. 특히 천안함 사건과 6자회담에 대한 엄격한 연계를 다시 검토해 볼 시점이 되었다. 이것은 사실 안보위기 상황을 수습하는 것과 국제질서의 냉엄한 현실을 함께 고민해야 할 딜레마다. 그러나 딜레마의 속성이 해결될 수 없는 것이라면 관리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다자간 협의체인 6자회담을 연계론으로 지속적으로 끌고가기에는 현실이 녹록지 않다. 중국의 이해를 구하기 쉽지 않고 ‘핵 없는 세상’을 추구하는 오바마 행정부도 지금과 같은 ‘전략적 인내’를 지속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이러한 상황은 우선 5월 24~25일 베이징에서 개최될 제2차 미·중 간 ‘전략과 경제대화’부터 조금씩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타이밍이 모든 것이다(Timing is everything)”이라는 말처럼,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에 따라 취할 수 있는 단호한 조치는 그대로 추진하면서도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의 진전을 이루어내는 또 하나의 외교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시간은 우리 편이었다고 해도 앞으로의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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