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의 오월, 가정에서 생명의 波動을 되찾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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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호 35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하느냐는 질문에 많은 사람이 가정이라 대답한다. 오십 줄에 들어선 필자의 남자동창들에게 물어봤다. 다들 성실한 가장들로 절반 정도는 자녀 교육을 위해 외로운 기러기 생활을 감내하고 있다. 그러면 가정은 어디에 있는가? 가족들이 모여 사는 집이 가정이라면 우리 주변에 떨어져 사는 가족들이 너무 많다. 그렇다면, 식구들이 다 모이면 가정이 될까? 요즘처럼 개인화된 사회에서 단지 한 지붕 아래에 사는 것만으론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부모·자식 간의 소통이 원활한 가정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에게 물었다. “너에게 가정은 뭘 뜻하니?” 희망, 사랑, 포근함, 안식처…. 온갖 아름다운 단어들이 다 나온다. ‘정말 그렇게 살고 있니?’라고 되물었을 때 자신 있게 답하는 친구는 별로 없다. 그들은 “그래도 믿을 곳은 가정밖에 없잖아? 자식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지”라고 말한다. 나는 또 묻는다. “왜? 왜 자식을 위해 희생해야 하지?” 대화가 여기에까지 이르면 친구들은 화제를 돌리고 싶어 한다. “몰라, 그게 자연의 이치 아닌가” 하는 막연한 답이 돌아올 뿐이다. 실제로 우리 세대는 가정과 자녀에게 맹목적일 만큼 열정적이고 헌신적이다.

그러나 자녀들의 태도를 보면, 그들의 표현대로, 확 깬다. 중 3인 내 아들과 아들 친구들에게 슬쩍 물었다. 이들이 대표성을 갖는다 말하긴 어렵지만 ‘가정’에 대한 답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스스로 갇혀버린 욕망의 울타리’라는 사뭇 당돌한 정의는 압권이다. 모든 것을 회의하는 사춘기임을 감안해도, 부모 세대가 머릿속에 그리는 ‘사랑과 헌신’이라는 파스텔 톤의 그림이 ‘갇혀버린 욕망’이라는 검은 색조의 음울한 그림으로 되돌아 올 때는 가슴이 서늘하지 않을 수 없다. 가정을 보는 자녀 세대의 차갑고 냉정한 시선은 낯설고 당혹스럽다.

현대사회에서 가정이 위기를 맞고 있음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눈에 보이는 것만 가치 있게 여기는 물질만능 세태에서 가정이 인간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돼라’고 강조하던 가정교육은 ‘경쟁력 제고’의 스펙 쌓기 경쟁을 위해 자리를 내어준 지 벌써 오래다. 학원에서 학원으로 뺑뺑이를 돌며 허겁지겁 지식을 받아 먹고 몸만 커져 가는 우리 아이들, 마음을 둘 곳이 없다. 모든 것이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고, 타자와 더불어 사는 공동의 가치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그 욕망마저도 맘껏 꽃피우지 못하고 마치 냉해를 입은 지난 4월처럼, 계절의 중간에 얼어붙어 있다. 욕망을 키우는 둥지가 아니라, 조건 없는 사랑이 싹트고 무언의 교감을 나누는 터전, 가정의 그 벅찬 의미를 어떻게 자녀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까.

지난 주말, 5월의 초입, 오랜만에 밝은 햇살의 축복을 받았다. 집 안을 치우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지없이 쾌청한 봄날이었다. 평소 좋아하는 책을 펼쳐들고 감미로운 햇살을 초청했다. 그런데 그 햇살은 나를 무작정 밖으로 이끌었다. 5월의 찬연한 햇살 아래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신록(新綠)의 가녀린 떨림들이 새색시 입김처럼 고운 바람을 타고 그대로 내 몸에 전해졌다. 산을 온통 뒤덮을 듯한 기세로 벚꽃들이 피어 올랐고, 바람결에 날린 꽃잎들이 행인들을 춤추듯 얼렀다.

아, 세상은 파동(波動)이로구나! 모든 걸 아우르고 감싸면서도 거역할 수 없는 위대한 생명의 파동이 그곳에 있었다. 생명의 파동, 우리가 잊고 살았던 가정의 비밀이 바로 그것 아닐까. 겨우내 참았다 일시에 터져 나오는 생명의 합창, 한파를 묵묵히 견뎌낸 나목 속에 봄의 생명수가 흐르듯, 때가 되면 보란 듯 피워내는 여린 꽃잎들처럼, 가정은 세파를 견디며 어린 생명들을 잉태하고 다른 나무들과 숲을 이루며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게 하는 조용한 축복 아닐까.

이심전심의 교감을 남편과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어 안달하는 나를 발견한다. 갑자기 얼마 전 함께 본 영화 ‘아바타’가 떠올랐다. 인간보다 여러 면에서 월등한 나비족은 인간이 갖고 있지 않은 기관을 하나 갖고 있다. 바로 꼬리다. 그들의 꼬리는 영혼의 시그널을 발신하고 수신한다. 숲 속에서 그들은 나무와 꽃들의 영혼이 해파리처럼 떠돌며 발신하는 내면의 소리를 감지해낸다. 영화감독인 제임스 캐머런이 말하고 싶은 게 이것이다. 인간은 동족이나 자연과 교감하는 촉수를 상실한 지 오래됐다고. 가정의 달에, 그런 꼬리 하나씩 나눠가질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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