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무리한 환율개입 부작용을 경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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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한국은행에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외환시장에서 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이 앞장서서 원-달러 환율의 하락을 막아보라는 거의 공개적인 요구나 다름없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공개적인 개입 요구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지나친 환율하락을 방치하란 얘기가 아니다. 시장개입의 효과는 불투명한 데 반해 부작용의 위험은 큰 만큼 개입을 가급적 자제하되, 하더라도 세련된 방법으로 하라는 것이다.

우선 경제부총리가 한은총재한테 시장에 개입하라고 주문하는 모양새부터 볼썽사납다. 세계 어느 나라 정부가 대놓고 중앙은행에 시장개입을 요구하는가. 진작부터 환율조작국이란 의심을 받고 있는 터에 정부의 공개적인 시장개입 요구는 불필요한 오해를 살 우려가 있다. 더구나 한은은 최근 정부의 요구대로 콜금리를 무리하게 내렸다가 시장의 불신을 자초했다.

원-달러 환율이 최근 유독 빠른 속도로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환율의 급격한 하락은 수출에 타격을 줄 게 확실하다. 그렇다고 해서 시장개입이 능사는 아니다. 최근의 환율하락은 한은이 외환시장에 개입한다고 해서 되돌릴 수 있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더 떨어질 공산이 크다. 최근 원화의 절상속도가 주요국 통화에 비해 빠른 것도 외환당국이 그동안 무리한 개입을 통해 인위적으로 환율하락을 막아온 탓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발권력을 동원한 시장개입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외환시장 개입의 약발은 갈수록 떨어지고, 달러 매도세력의 배만 불려줄 우려가 크다.

더 큰 문제는 무리한 시장개입이 가져올 부작용이다. 한은이 돈을 찍어 외환시장에 개입하면 그만큼 통화량이 늘어나고, 풀린 돈을 빨아들이려면 통화안정증권을 더 발행해야 한다. 이미 통안증권 이자로만 한해에 몇 조원이 더 풀린다. 물가와 환율이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이도저도 다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