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유출 BP사, 줄소송 눈앞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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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가 새어 나오고 있는 멕시코만 해저 유정 위에 씌워질 ‘오염 차단용 돔’이 5일(현지시간) 대형바지선 위에 실려 사고 해역을 향해 출발하고 있다. [포천 블룸버그=연합뉴스]

영국 석유회사 BP가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로 천문학적인 규모의 ‘줄소송’ 사태에 직면하게 됐다. BP는 “이번 사고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피해자 보상과 유출된 기름 제거에 드는 돈을 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파이낸셜 타임스(FT)는 6일 BP에 대한 소송 규모가 당초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 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BP를 상대로 제기된 집단소송은 이미 30여 건이 넘는다. 하지만 계속 늘어나고 있다. 미국 루이지애나주의 변호사 모리스 바트는 BP 등 이번 사고에 관련된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사람을 찾는 광고를 이번 주 TV로 내보냈다. 그 결과 100여 명이 동참 의사를 밝혔다. 개중엔 굴 운송업자는 물론, 연례 요트대회를 취소하게 된 미시시피 요트 클럽, 잡지사에서 의뢰받은 낚시 대회 기사를 쓸 수 없게 된 프리랜서 기자까지 있었다. 바트 변호사는 “루이지애나·앨라배마·미시시피 3개주에서 소송 의뢰가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법률회사 소속 변호사 45명 가운데 6명을 이 사건 전담 변호사로 배정했다. 개인들만 소송에 나선 게 아니다. 원유 유출 사고로 피해를 보게 된 또 다른 주(州)인 플로리다의 찰리 크라이스트 주지사는 4일 “주 차원에서 BP를 고소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예상 배상 금액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1990년 제정된 기름오염방지법(OPA)에 따르면 중대한 과실이 입증되지 않는 한 이번 사고에 대한 BP의 법적 배상 한도액은 7500만 달러(약 860억원)다. BP는 이미 4개주에 대한 보조금과 방제 비용으로 2500만 달러를 지출했다. 하지만 소송을 대행하고 있는 변호사들은 BP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요구할 계획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일 경우, 벌금조로 실제 피해 규모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미국 특유의 법 제도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일 경우 BP의 배상 책임은 사실상 무한대로 늘어난다.

미 의회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주당의 로버트 메넨데즈, 프랭크 로런버그(이상 뉴저지), 빌 넬슨(플로리다) 상원 의원은 OPA 배상 한도를 100억 달러(약 11조4600억원)로 끌어올리는 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들이 새 법을 BP 사건에 소급 적용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한편 BP는 5일 원유가 새고 있는 해저 유정 위에 설치할 ‘오염 차단용 돔’(사진·그래픽 참조)을 대형 바지선에 실어 사고 해역으로 출발시켰다. 4층 건물 높이(12m)에 무게가 90t 이상 나가는 이 돔은 유정의 3개의 누유 부분 가운데 가장 큰 구멍 위에 씌워질 예정이다. BP는 이 돔에 파이프를 연결해 수면 위로 원유를 퍼올린다는 계획이다. BP의 최고운영책임자(COO) 덕 셔틀즈는 “모든 게 계획대로 진행되면 10일께 시설 가동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김한별 기자
그래픽=김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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