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여성에게 더 엄격한 공천심사 ‘이중 잣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6.2지방선거 선거 때만 되면 각 당은 여성 후보를 우대하겠다는 구호를 내건다. 유권자의 절반인 여성들을 겨냥한 구애다. 하지만 구호는 구호일 뿐, 현실과의 거리는 늘 좁혀지지 않는다.

6·2 지방선거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3월 한나라당 공천심사위는 기초단체장 선거에 서울 3곳 이상, 부산·경기 2곳 이상, 나머지 시·도 각 1곳 이상 여성 후보를 공천하겠다고 의결했다. 이 약속들은 지켜지고 있을까.

5일 현재 ‘할당’을 채운 곳은 서울과 부산·대구·인천뿐이다. 2곳 이상을 여성 후보로 채우겠다던 경기에선 단 한 명도 공천하지 못했다. 경기도의 기초단체장은 무려 31명이다. 한나라당의 지지 기반이 강해 사람들이 몰리는 경남·북에서조차 여성 기초단체장 후보가 한 명도 없다. 4년 전인 2006년 지방선거 때도 한나라당은 서울에서 김영순 송파구청장 단 한 명의 여성밖에 공천하지 않았다.

그만큼 자격 있는 여성 인재들이 없어서일까. 공천 심사장 안의 풍경을 잘 아는 사람들의 얘기는 다르다. “남성인 공천심사위원이나 당협위원장들이 남성 후보와 여성 후보에게 각각 다른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중앙당 공심위원)이라는 거다. 여성 후보를 공천하기로 한 경기 용인시에서도 “경쟁력 있는 여성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댔다고 한다. “경쟁력 있는 여성”에서 말하는 ‘경쟁력’은 공천을 받은 사람들을 보면 안다.

한나라당에서 여성으로 이번에 공천을 받은 이재순 동작구청장 후보는 대한민국 ‘여성 장군 2호’다. 박춘희 송파구청장 후보는 명망 있는 변호사다. 민주당 홍미영 인천 부평구청장 후보는 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경력만 놓고 본다면 국회의원들에 비해 ‘꿀릴 게 없다’. 불출마를 선언한 김영순 서울 송파구청장의 경우 차관까지 지냈다.

이러다 보니 장성급, 차관급, 변호사 등 각 분야에서 한 가락 하지 못하는 여성은 명함도 못 내민다. 한나라당 인재영입위가 서울 강남권 구청장 후보로 영입한 의대 학장 출신의 한 여성조차 당협위원장들이 “나와도 당선되기 어렵다”고 겁을 주는 바람에 스스로 포기했다고 한다.

한나라당의 한 여성 의원은 “남성의 경우 당협위원장과 가까우면 치킨집 사장도 상관없지만 여성에겐 시·도지사나 국회의원급의 경력을 요구한다”고 개탄했다.

이가영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