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사령관 "북, 테러집단에 플루토늄 팔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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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 사령관이 19일 "북한이 외화를 얻기 위해 무기급 플루토늄을 테러 집단에 팔 수도 있으며, 이는 전 세계적인 재앙"이라고 말했다.

러포트 사령관은 이날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공군사관후보장교회의 초청 강연에서 지난 13일 노무현 대통령이 "핵이 자위수단이라는 북한의 주장이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고 LA에서 발언한 데 대한 입장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러포트 사령관은 "북한은 미사일과 미사일 기술 등을 (전 세계로) 확산시켜 왔다"며 "또 그들은 명백히 사용후 핵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할 기회를 가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북한이 테러 집단에 무기급 플루토늄을 팔 가능성은 국제사회의 또 다른 우려"라고 말했다.

러포트 사령관의 이 같은 답변은 미국의 입장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정리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을 대테러 문제 또는 핵비확산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은 북한 핵을 한반도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현안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의 시각과는 차이가 있다.

동시에 북한에 보내는 메시지 성격도 있다. 북한 핵에 대한 미국의 인식은 최근 미국의 대북 핵정책으로 자리잡고 있는 '레드 라인(red line)'으로 함축된다. 미국은 지난해 여름부터 북한 핵개발에 대한 새로운 대책 마련에 고심해 왔으며, 정책 입안자들 사이에 레드 라인이란 개념을 다시 설정하게 됐다.

북한이 레드 라인을 넘는 것은 핵무기, 플루토늄 또는 고농축 우라늄 등 핵물질, 핵무기 기술 등을 외국 또는 테러집단에 수출하는 경우다. 북한이 레드 라인을 넘을 경우 북한군이 전면 남침하는 상황과 같은 수준으로 다룬다는 게 미국 정가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북한이 전면 남침할 때처럼 미국이 동원할 수 있는 다양한 무력 사용도 불사한다는 의미다.

미국이 이 같은 정책방향을 잡은 것은 복잡하게 꼬인 북한 핵 문제를 한반도의 남북관계와 분리하기 위해서다. 또 섣부른 선제공격과 같은 행동을 자제한다는 목적도 담겨 있다. 북한이 설사 핵무기를 완전하게 개발하고 실전에 배치하더라도 명확한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영향도 있다. 미국은 이라크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켰지만 정작 대량살상무기는 발견하지 못해 국제적 비난을 받았다.

결국 러포트 사령관의 이날 발언은 북한에 보내는, "레드 라인을 넘지 말라"는 경고일 수 있는 것이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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