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자금 임자 만났나 … 하루 만에 3조원 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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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 공모 청약이 시작된 3일 한국투자증권 목동지점은 ‘대목’ 분위기였다. 문을 열자마자 고객들이 밀어닥치기 시작해 하루 종일 객장이 붐볐다. 평소 20~30번대에서 끝나던 대기표도 이날은 140번대까지 이어졌다. 이한용 지점장은 “하루 동안 개인 고객들의 청약자금만 122억원이 넘게 들어왔다”며 “신규 고객이 많은 데다 평소 공모주에는 관심이 없던 기존 고객들도 대거 청약에 나섰다”고 말했다.

#한식당을 운영하는 김모(58)씨는 3일 삼성생명 공모에 5억원가량을 넣었다. 은행 예금과 단기 투자상품에 들어 있던 자금을 빼고, 청약 규모를 키우기 위해 직장에 다니는 자녀들의 여유 자금까지 보탰다. 그는 “주변에서 참여하는 사람이 많은데다 어차피 이자도 거의 안 나오는 은행에 돈을 넣어두느니 한번 넣어보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갈 곳 잃은 시중의 부동자금이 삼성생명의 공모 청약에 대거 몰리고 있다. 첫날 들어온 청약 자금은 3조1820억원, 청약 경쟁률은 6.51대 1을 기록했다. 3월 대한생명의 공모주 청약 당시 최종 경쟁률은 23.7대 1이었지만 첫날 경쟁률은 0.92대 1에 그쳤었다.

업계에선 공모가가 당초 예상보다 높아지면서 경쟁률은 그리 높지 않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증권사 문을 열자마자 투자자들이 몰리며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다. 대우증권 김학균 투자전략팀장은 “부동자금은 계기만 만들어지면 한쪽으로 확 쏠리는 경향이 있다”면서 “시중에 갈 곳을 못 찾고 떠다니는 돈이 많은 데다 모처럼만에 대형 이벤트가 벌어지자 쏠림이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대규모 자금이 움직이면서 증권업계에서는 삼성생명 상장이 시중 부동자금을 증시로 끌어들이도록 ‘물꼬’를 터줄 것이란 기대도 나오고 있다. 신영증권 김세중 투자전략팀장은 “돈은 보통 투자위험이 낮은 은행예금에서 채권을 거쳐 공모주, 증시 순으로 흘러가는 특성이 있다”면서 “연초 은행에 자금이 몰리다 예금금리가 떨어지자 최근 채권시장으로 흘러가 있는 상태지만 채권 수익률도 바닥에 근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생명 공모에 몰린 자금 중 상당 규모는 다시 원래 자리로 가겠지만 일부는 남아 추가로 공모 투자 등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특히 이번 공모를 위해 새로 증권계좌를 연 경우가 많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평소 주식 투자에 큰 관심이 없었던 이들까지 대거 참여했다는 의미다. 대표 주관사인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3월 하루 평균 300여 개의 계좌가 새로 개설되던 것이 삼성생명 공모가가 확정된 지난달 23일 이후에는 1500~2500개로 급증했다. 첫날 기록으로는 이례적으로 높은 경쟁률도 여기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자산가들도 마찬가지다. 삼성증권 테헤란지점 김도형 PB는 “당초 9만원대 중반으로 봤던 공모가가 11만원까지 높아지자 고객들이 다소 멈칫거렸지만 청약이 시작되자 일단 참여하고 보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부동산·채권·주식 등 어디로도 돈이 갈 데가 마땅찮은 상황이라 ‘큰 손실이야 보겠느냐’며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주식 투자에 부담을 느끼는 투자자가 많은 만큼 본격적인 자금 유입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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